나폴레옹은 육사시절 .″통솔력 무″|공자의 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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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자는 대단한 관상가였다. 논어에도 그가 제자들의 관상을 보며 즐기는 대목이 있다.
어느날 공자는 자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있다가 『자네는 아무리 봐도 온전히 죽을 것같지 않구나』하며 서글퍼했다. 아닌게 아니라 자로는 나중에 의리의 옛 주인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다.
그토록 관상을 잘 본 공자도 사람을 잘못 보는 수가 많았다.
제국을 순유중에 있던 공자일행이 1주일동안이나 밥한통 입에 넣지못하며 고생하던 때였다. 공자가 낮잠을 자고있는 동안에 어떻게 마련해왔는지 애제자 안회가 쌀로 죽을 끓이고 있었다.

<성인 공자도 실수>
공자가 자는듯 마는듯하며 이를 보고 있으려니까 죽이 끓을 무렵에 안회는 남비속에 손가락을 넣어 밥한톨을 꺼내어 입안에 넣는 것이었다. 공자는 속으로 『괘씸한 놈』이라 여기면서도 못본체하고 있었다.
이윽고 죽이 다 끓었다. 안회는 공기에 담아 제일 먼저 공자에게 바쳤다. 그러자 공자는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방금 돌아가신 아버님 꿈을 꾸었다. 그러니 먼저 아버님에게 드려야겠다』
그러자 안회는 당황한 듯이 대답했다.
『그건 안됩니다. 아까 죽을 끓이고 있을때 남비속에 그을음이 들어갔습니다. 그래 손을 넣어 건져 냈읍니다만 그냥 버리는 것이 아까와 그만 제입에 넣고 말았습니다. 그런 부정탄 죽을 어떻게 바칠수 있겠읍니까』
이말을 듣자 공자는 크게 탄식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내눈으로 본것만은 믿을 수 있다고 여겨왔는데 그 눈마저 믿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마음이야말로 믿을 수 있다고 여겨왔는데 그 마음마저 믿을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제자들이여, 잘 알아두어라. 사람을 안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는 바를』
여씨춘추에 나오는 얘기다.
공자는 뭇 제자중에서 안회를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때로는 자기 보다 안회가 더 뛰어났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안회는 또 죽는 날까지 한때도 공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안회를 알고있다고 생각해온 공자였다. 그런 공자도 안회를 잘못보았던 것이다.
역사책을 펼쳐보면 스승이 제자를 잘못 본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오랫동안「네로」의 가정교사였던「세녜카」 는 「네로」가 틀림없이 명군이 되리라고 장담했다. 아닌게 아니라 로마황제자리에 오른 초기에「네로」는 명군다왔다. 처음으로 사형집행영장에 서명해야만하게 되자 그는 『내가 글을 배운게 한이로다』 하며 탄식했다.

<드골은 ,성적불량>
그렇든 「네로」가 어느 사이엔가 폭군으로 탈바꿈하였다. 그것은 여러가지 어쩔수 없는 사정들 탓이라며「네로」 동정론을 펴는 사가도 있지만 폭군이 될수 있는 자질을 「네로」 는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세네카」 가 간파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는 공자 이상의 철학자였을지는 몰라도 관상가는 되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브리엔사관학교를 졸업할때 교관으로부터 『지휘능력 없음』이라는 낙인을 찍혔음은 너무나도 유명한 얘기다. 「드골」도 육대를 졸업할 때의 성적이 꼴찌에서 세 번째로 나빴을뿐이 아니었다. 어느 교관이나 그는 키가 크다는 이외에는 살만한점이 별로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스승이 제자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이처럼 어렵기만하다. 그런 어려운 짐을 우리네 대학교수들이 새로 걸머지게 되었다. 올해부터 사법·행정고시등 5급이상 국가공무원채용시험때 학교추천성적을 3O%나 반영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각대학에서는 지도교수들이 학생들의 판단력이며 국가관 또는 인간관계등에 대한 평가를 학년말마다 해오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학생들의 장래에 별로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기에 다분히 형식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지도교수들은 그리 부담스러워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한 교수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로 학생의 앞날이 결정되다시피한다. 만약 잘못평가를 한다면 비단 학생 당사자만이 아니라 국가로서도 큰 피해를 보게되는것이다.
그러나 과연 교수가 학생의 전인격과 자질을 제대로 평가하기에 충분할만큼 학생들과 접촉하고 있을까? 판단력이나 창의력은 혹은 강의실안에서 평가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가관은 혹은 지도교수실에서 테스트할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지도력이나 책임감, 그리고 인간관계등은 강의실안에서는 전혀 알아낼 수 없는항목들이다.·

<잘못되면 국가손해>
테스트의 장소가 각각 다른 것이다. 이를 강의실안에서 한 교수가, 그것도 제대로 평가할수 있다면 그건 압기나 다름이 없다.
한 학생의 창의력을 두고 연소기예의 과학자와 원숙한 철학자와는 전혀 엇갈리는 평가를 할 가능성이 많다. 같은 과학자라도 창의력이 뛰어난 교수라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학생의 창의력을 낮게 평가할 수도 있다.
여기에 또 교수자신의 품성이 크게 문제된다. 가령 강의시간중에 까다로운 질문으로 자주 교수를 괴롭히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학생의 뛰어난 학구심의 탓이라고 얼마든지 좋게 볼수 있다. 달리보면 그것은 또 권위에 대한 몹시 불쾌한 도전이 되어 감점이 된다.
그 어느 쪽에 기우느냐는 것은 평가교수 자신의 교수로서의 자질에도 관계되지만 교수와 학생사이에 어쩔수 없이 개재하게되는 인정에도 달려있다. 평가는 디욱 객관성을 잃게되게 마련이다.

<교수의 품성도 문제>
어떻든 오늘의 대학교수는 아무리 정학이라 하더라도 공자만한 관상가가 되기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나마 공자도 완전무결한 관상가는 되지 못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하고 어느 대학에서나 평가교수들은 웬만하면 모두 30점 만점을 주려할 것이 틀림이없다.
이렇게 되면 또하나의 엉뚱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가령 판단력도 만점, 창의력도 만점, 지도력·책임감·국가관·인간관계등도 모두 만점을 받는 학생이 있다. 이런 인격만점의 학생이 한두명도 아니고 수십명 수백명이 몰려드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호지에서 양산박에 몰려든 수많은 영웅호걸들처럼 신명나는 일이다. 그러나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허망한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굳이 교수들에게 응시학생들의 전인격을 평가토록 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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