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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미래를 읽는법(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앞으로 올 시대를 읽지못하면 공용처럼 멸망해갑니다.
사람들은 곧잘 그러한 예로서 볼딩 로코모티브사를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20세기초에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세계에서 첫손 꼽히는 당당한 기업이었지요. 생산방식에 있어서나 그 경영에 있어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완벽한 효율성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디젤이나 전기기관차가 등장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옛날과 다름없이 증기기관차에만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그 수증기와 함께 꺼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그것이 겨울의 부채나, 여름의 화로가 되어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까닭입니다.
부채를 잘 만든다는 것은 효율성의 문제이지만, 그것이 철에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유효성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효율성이 높은 부채를 만들어도 겨울철에는 「유효성」이 없기때문에, 그 값을 잃고마는 것이지요. 그리나 디젤이나 전기기관차가 증기기관을 이기고 시대의 앞장을 서게되지만 그것들은 다시 자동차나 비행기의 도전으로 유효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번에는 철도, 그 자체가 사양화하는 운명에 놓이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수시로 변해가는 그 유효성에는 하나의 리듬과 순환성이 있기때문에 철도의 석양속에는 또 내일의 아침햇살이 숨어있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자동차가 교통수단의 주역이 되면 점점 그 대수가 늘어나게되고 그렇게되면 아무리 길을 넓히고 고속도로를 닦아도 자동차의 체중은 날로 심해질 수밖에 없읍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에너지위기의 주역일뿐아니라 공해의 원흉이기도한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자동차에 밀려났던 철도가 다시 기사회생하게 되어 벌써 프랑스에서는 파리-리옹간에 초특급열차를 위한 철도가 개발되어 기차의 재생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와 자동차의 나라라는 미국에서도 83년인 올해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샌디에이고선을 비롯, 전국적인 「탄구철도계획」에 착수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기차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의 변천을 가장 민감하게 드러내는 교통수단의 예 하나를 보더라도 자연의 계절처럼 인간의 문명에도 새잎이 단풍져 떨어졌다가는 다시또 새싹이 피어나는 사계의 순환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읽는 방법은 효율성만이 아니라 유효성을 따져봐야하고, 그 유효성을 알기 위해서는 오동잎하나 지는 것을 보고 천하의 가을을 알아내는 시인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정치가도 기업인도 그리고 과학자라 할지라도 앞으로의 승부는 창조적인 상상력에 달려있읍니다.
상상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반대의 것을 통합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물과 불은 영원히 대립해 있는 것이지만, 시인들은 옛날부터 이 반대되는 물질을 결합시키는 상상의 용광로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인들이 그렇게 많이 「술」을 노래해온 것은 그것이 「불타는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알콜자체의 물질이 발화성을 가진 액체지만 그것이 정신에 일으키는 영향도 물의 평정과 불의 격동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도 그렇습니다. 피는 액체이면서도 열을 가지고있고 불꽃과 같은 붉은 색채를 지니고 있읍니다.
김소월의 산유화를 읽어보십시오.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갈봄 여름없이 꽃이 피데…」로 시작되어 있지만 그시의 마지막에는 「산에는 꽃지네, 꽃이지네…갈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로 되어있습니다. 꽃이 피는 것과 꽃이 지는 것은 정반대의 현상이지만 소월의 시에 있어서는 그것이 하나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순환하는 것들은 직선운동과는 다릅니다. 역사는 직선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계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때문에 「셸리」의 시구처럼 겨울의 추위가 거꾸로 봄의 따스함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쥐구멍에도 별들 날이 있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비합리적인 속담이 아니라, 역사의 순환성을 정확히 짚어낸 슬기의 말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한 승리자가 없듯이 영원한 패배자도 없는 것입니다. 가위는 보자기를 이기고 주먹은 가위를 이깁니다. 그러나 그 주먹은 거꾸로 가위에 진 보자기에 지는 것입니다. 가위·바위·보에는 순환성이 있을뿐 절대지배라는 것이 없지요. 오는 계절을 미리알고 노래부른 시적 상상력을 가지고 우리는 미래의 의미를 읽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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