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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120년, 고대 100년 '고연전' D-3]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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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고려대 농구부 선수들이 14일 훈련을 마친 뒤 진효준 감독(가운데)과 함께 “무조건 이기자”고 외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970년대는 양교의 경쟁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연세대는 73년과 74년 잇따라 고려대에 참패했다. 73년에는 농구만 이기고 나머지 종목에서 모두 패해 1승4패, 74년에는 축구만 비기고 나머지는 모두 패해 1무4패의 참담한 성적을 냈다. 격분한 학생들이 박대선 총장 집무실로 몰려가 집기를 부수는 등 난동에 가까운 시위를 벌였다. 박 총장이 물러났고, 동문들은 정기전 패배 탓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분위기가 이 정도이다 보니 선수들의 신경전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재흠 연세대 축구부 감독은 "4학년 때 고려대 1학년 선수가 거친 태클을 걸었다. 넘어진 나한테 그 녀석이 다가와서 '선배님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하기에 '괜찮다'고 했더니 '다음에는 확실하게 밟아 드릴게요'라고 하더라"고 회고했다.

78년 정기전 축구에서 연세대의 결승골을 넣은 신문선 SBS 해설위원은 "햇볕에 새까맣게 탄 등에 백넘버 7자가 선명하게 새겨질 정도로 훈련이 혹독했다. 결승골을 넣었더니 그해 연말까지 신촌의 당구장.술집 등이 전부 공짜였다"고 했다.

74년 정기전 농구경기. 연세대는 고려대 가드 박성민을 잡기 위해 1년생 최희암을 전담 수비수로 기용했다. 최희암은 2분 만에 5반칙 퇴장당했다. 다음 타자는 역시 1년생 박수교. 박수교는 심판이 못 보는 사이 심한 파울을 해 박성민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하필이면 고려대 응원석 앞이었다. 고대생들이 음료수 병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연세대 응원석에서도 빈병을 던졌다. 수라장이 돼 경기를 계속하기 어려웠다. 그때 콜라병 하나가 공교롭게도 센터 서클 한복판에 거꾸로 섰다. 양교 응원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콜라병이 화해의 촉매가 됐다.

우수한 선수들이 제때 졸업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고의 유급'이다. 60년대 아이스하키 스타 김종갑씨를 연세대에서 고의로 유급시키자 고려대는 김세일(안양한라 단장)씨를 1년 더 다니게 했다.

고려대 출신 야구인들은 96년 정기전을 잊지 못한다. 최남수 감독이 별세한 뒤 열린 정기전에서 선수들은 검은 리본을 달고 뛰었다. 선발 손민한(롯데)에게 마무리 조성민(한화). 고려대가 2-1로 이겼다.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조성민이 마운드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주먹으로 땅을 치며 울부짖던 장면을 기억한다. 조성민의 아버지 조정구씨와 최 감독은 인천 출신에다 한일은행 동기로 막역한 사이였다.

허진석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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