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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산은 끝없는 벼랑끝 대치 … 유동성 위기 1년 넘도록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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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동부그룹 구조조정 작업이 삐걱대고 있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 지 1년여가 흘렀지만 계열사들의 유동성 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주채권은행 산업은행과 동부그룹간 ‘벼랑끝 대치’도 반복되고 있다. 동부와 비슷한 시기 ‘선제 구조조정’에 나선 현대그룹과 한진그룹의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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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현안은 동부건설이다. 산은은 동부그룹에 이달말까지 대주주와 계열사의 동부건설 지원 확약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해놓은 상태다. 최대 1000억원의 자금을 지원을 할테니 같은 액수를 내놓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동부측이 이 제안에 난색을 표하면서 협상은 해를 넘겨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대주주의 지분은 이미 대부분 담보로 잡혀있는데다, 계열사 물량을 동부건설에 수의계약하는 식의 지원은 자칫 ‘일감 몰아주기’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룹의 핵심 매물인 동부하이텍의 매각 작업도 난항이다. 금융투자(IB)업계에 따르면 10월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아이에이·에스크배리타스자산운용 컨소시엄은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자 30일 우선협상 지위를 반납했다.

 산업은행과 동부그룹의 벼랑끝 대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양측간 ‘불신’이 골이 깊어진데 따른 것이다. 동부발전당진과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묶어팔려다 실패한게 도화선이었다. 산은은 동부발전당진은 인수하려는 곳이 있는 반면 동부제철 인천공장은 인기가 없다는 판단에 이를 패키지로 판매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사실상 유일한 인수후보이던 포스코가 지난 6월 공식적으로 인수를 포기하면서 이후 구조조정 과정도 엉클어졌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매각 실패 직후 신용평가기관들이 동부제철과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을 일시에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리면서 위기가 심화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애초 팔기가 쉽지 않은 매물이었기 때문”이라면서 “실사 이후 예상보다 부담이 크다는 판단에 인수 후보들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반박했다.

 결국 채권단은 동부제철을 대상으로 자율협약을 체결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로도 갈등은 반복됐다. 실사 결과 동부제철의 자산가치가 -5006억원으로 평가되자 동부측은 “지나치게 가혹한 조건을 적용했다”며 반발했다. 채권단이 대주주의 지분에 대해 100대1의 감자를 실시, 김준기 회장이 경영권을 잃는 과정에서도 격렬한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동부발전당진을 SK가스에 2010억원에 파는 과정에서도 동부측은 ‘헐값 매각’ 논란을 제기했다.

 동부건설 문제를 놓고도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동부측은 그간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자산 매각 등으로 상당부분 막은 만큼 산은이 1000억원을 지원해주면 정상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산은 관계자는 “모든게 순조롭게 간다는 최상의 가정을 전제로 해도 2000억원은 필요하다”면서 “대주주는 아무런 희생을 하지 않고 은행에만 지원해달라는 건 말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업계는 산은의 지원이 불발돼 동부건설의 운영자금이 바닥날 경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있다.

 문제는 법정관리로 갈 경우의 여파다. 150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들이 일시에 어려움에 처하면서 자칫 줄도산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동부건설은 관급공사 위주라 추가 부실이 생길 여지는 적다”면서 “협상이 잘 돼 지원이 이뤄지면 일단 회사가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는 선에서 중재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조민근·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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