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지켜 더 돋보인 지아코마치 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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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마치가 ‘해양국가 이탈리아’를 구했다.”

30일 한 이탈리아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자코마치는 그리스 서부의 파트라스항에서 이탈리아 안코나항으로 향하다 화재로 조난당한 페리 '노르만 애틀란틱' 호의 선장 아르길리오 자코마치(62) 선장을 가리킨다.

그가 한 일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과거 선장들이 해오던 바를 했을 뿐이다. 선장으로서 조난당한 배를 마지막까지 지킨다는 ‘전통’ 말이다.

그가 조난신호를 보낸 건 28일 오전이었다. 차량 탑재 칸에서 화재가 난 직후였다.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곧 선실도 삼켰다. 신발 밑창이 녹을 정도로 배가 달아올랐다. 정상 작동한 구명정은 서너 척에 불과했다. 한 승객이 “구명정이 꿈쩍을 안 했다. 그러다 하나가 떨어지긴 했는데 주변에 있던 10명이 바다에 빠졌다.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시속 74㎞의 강풍이 부는 차가운 겨울바다였다. “자칫 대형 참사”(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배 안은 혼란으로 빠져 들었다.

이탈리아·그리스는 물론이고 알바니아 구조대까지 나섰다. 악천후에도 구조 작업을 이어갔다. 구조작업은 밤중에도 이어졌다. 자코마치 선장은 배를 지켰고 구조 활동을 도왔다.

그가 조난신호를 보낸 지 36시간 만에 배 안에 있는 이들이 모두 구출됐다. 그는 선박에 남은 탑승자가 없음을 최종 확인하고 선언했다. 해군 네 명과 카페리를 예인선에 묶는 작업을 마친 뒤에야 배에서 내렸다.

그 사이 427명이 구조됐다. 10명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러나 탑승명단에 478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41명의 생사가 불분명한 셈이다. 더욱이 구조된 사람 중엔 명단에 없던 이도 있었다. 마우리치오 루피 이탈리아 교통장관이 “탑승자 명단이 애초 468명으로 보고됐다가 478명으로 늘어났고, 구조된 사람 중 탑승자 명단에 없는 경우도 있어 현재로서는 전체 탑승 인원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선 안도하는 기류가 있다. 구조대원과 자코마치 선장의 헌신이 두드러진 덕분이다. 특히나 자코마치 선장을 극찬하는 분위기다. 영국 언론도 “당시의 영웅”(가디언)이라고 표현했다.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처럼 2012년 이탈리아 연안에서 침몰한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프란체스코 셰티노 선장이 가장 먼저 배를 버렸다는 아픈 기억 때문이다. 해양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로선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당시 배를 버리고 도망간 셰티노 선장은 현재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자코마치 선장을 위한 페이스북 계정이 마련됐는데 거기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저 임무를 다했다지만 브라보!”“끝까지 맡은 바를 했다. 이탈리아엔 당신 같은 사람이 더 많다. 마침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자코마치 선장의 부인인 파올리아는 구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이탈리아 언론에게 “21살 이후 바다에 산 사람이다. 진정 일에 헌신해왔다”고 했다. 딸인 줄리아도 “아버지는 이런 상황에 대처할 능력도 경험도 많다. 아버지를 믿는다”고 했다. 가족들이 믿고 기다린 자코마치 선장은 배에서 내리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곧 집으로 갈 것이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영상=JTBC보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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