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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위대 쿠데타 기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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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경=신성순 특파원】『지난 80년 4월께 일본 자위대내에서 1개 사단(약1만명)규모의 병력이 참가하는 쿠데타 계획이 거사직전 발각되어 장교를 포함한 1백12명이 극비리에 인사조치 됐다.』
21일 하오 중의원 예산 위원회에서는 질문에 나선 사민련의「나라자끼」(준기미지조) 의원이 이같은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일본 조야에서는 자위대의 쿠데타 예기가 큰 화제가 되고 었다.
「나라자끼」의원은『쿠데타 계획에 직접 참가했던 관계자 여러 명으로부터 증언을 들었다. 필요하다면 증거서류도 제출하겠다』고 심각한 자세다.
「나라자끼」의원의 폭로에 따르면 이 쿠데타 계획의 이름은『79년 국제 개조론』79년부터 80년에 걸쳐 7개월간 계획을 짰으며, 관계장교 전원이 당직일인 80년6월10일을 결행일로 정하고 있었다.
참가 부대는 육상 자위대의 제10사단(나고야) 대대장보좌·중대장 급이 중심이 되어 제1공정단(??지야 주둔)과 해상 자위대의 오오마나또(대주) 지방대 및 동 항공단, 그리고 힝공 자위대의 하마마쓰(빈송) 제1술과 학교 병력 등 모두 1개 사단 규모.
쿠데타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제1단계로 하마마쓰로부터 항공기로 수상 관저를 습격, 네이팜탄 3발로 관저를 폭파하며 동시에 국회·NHK 방송국·자민당·사회당 본부를 점거하고 수도 고속도로·해상 등을 봉쇄, 제압한다.
이어 계엄령을 선포하고 임시수반에 미리 결정된 인물을 내세우는 것으로 돼있다.
이 계획에서는 일단 성공율을 50%로 보았으나 만일 실패하는 경우에는 관계자들이 수상관저에서 자폭한다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이 계획은 제1공정단에서 이탈자가 생겨 정보가 누설되는 바람에 80년4월께 자위대의 경무대가 조사에 나서고 내각 조사실까지 움직이는 바람에 미수로 끝났다.
「나라자끼」의원은 당시 책임자들이 이 사건이 상층부에 파급되는 것을 두려워해 은밀히 내부처리, 항공 자위대의 장교 42명을 포함한 관계자 1백12명을 인사 조치하는 것으로 어물어물 처리했다고 밝혔다.「고또오다」(후등전정청) 관방 장관은 이같은 발언에 대해『지금까지 쿠데타 계획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나름대로 조사를 했지만 언제나 사실무근이었다』 고 말하고 있고 방위청 쪽도『사실무근』이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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