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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익뿐 아니라 모두의 이익 위해 참여하고 대안 제시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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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수연(40·여)씨는 서울 중구 회현동 제4통장 일을 4년째 맡고 있다. 그런데 반상회를 4년간 한 번도 열지 못했다. “전임 통장 때부터 없어졌다더군요. 맞벌이도 많고 각자 여가 생활에 바쁘니까요.”

 주민들끼리 얼굴을 맞대던 모임을 요즘엔 찾아보기 어렵다. 서씨는 “예전엔 이웃이 누군지 알았지만 지금은 문을 닫고 산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열악한 계층을 제때 파악하지 못해 필요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몇 해 전 회현동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숨진 뒤 몇 개월 후에야 발견된 적이 있다. 주민 모임이 없다 보니 사회 안전망에 허점을 드러낸 셈이다.

 그런데 회현동에 지난달 인터넷 모임이 시작됐다. 손봉애 중구청 자치행정과 주임은 “직접 모이는 게 불가능해 ‘온라인 반상회’를 시작했다”며 “고령층은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긴 해도 동마다 100여 명씩 가입했다”고 소개했다. 새로운 주민 참여의 통로인 ‘인터넷 커뮤니티’가 출범한 것이다.

 본지가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시민의식을 조사했더니 지역 현안이나 국가 정책 결정 과정에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고 있다고 느끼는 국민은 소수였다. 예컨대 거주 지역 현안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77.2%였다. ‘정부의 주요 결정을 이해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고 있느냐’ ‘국가 정책 시행 때 시민의 요구를 잘 반영한다고 보느냐’는 물음에도 60% 이상이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국가·지방자치단체와 시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회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 정치·경제·사회 상황을 종합할 때 지금이 위기라고 본다는 견해가 74.2%나 됐다. 시민들이 꼽은 위기 요인은 정치 불안(34.1%), 경제 위기(30.6%), 사회 대립갈등(11.9%), 빈부 격차(10.5%), 남북관계 위기(8.6%), 교육문제(3.7%) 순이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현대사회의 갈등과 위기가 복합적이어서 정부나 시장의 힘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참여하고 책임지는 시민이 나서는 것이 대안으로 꼽힌다. 본지 조사에서도 시민들은 이 같은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이런 역할을 할 시민의 덕목으로 책임의식(38.3%)과 배려(18.3%), 참여(18.2%), 준법(12.6%) 등을 꼽았다.

 하지만 공익 활동에 시민이 참여하는 단계는 아직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학계에서 기준으로 보는 1년에 적어도 5일 정도 공익적 활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응답(58.8%)이 ‘그렇다’는 답변(41.1%)보다 많았다. 동호회·친목 모임이 국내에서 활발한 것과 대조적이다.

 대학 시절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했던 직장인 정모(40·경기도 김포시)씨는 오페라와 골프 동호회 두 곳에서 활동하고 올해 고교·대학 동창 모임에만 10여 차례 참석했다. 하지만 공익 단체에 회원이 되거나 후원한 적은 없다. 뉴스를 놓고 직장 동료와 토론하는 정도다. 그는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시민단체 활동이 필요하고 시민이 나서야 한다고 믿지만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하고 지역 시민단체에 대한 정보도 없어 가입할 생각을 못해 봤다”고 말했다.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만 뛰어드는 행태도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 참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문수(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의원은 “급식 등 자녀와 관계가 있거나 재개발처럼 이익이 걸린 문제와 관련해선 시위까지 하지만 공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해야 할 때는 시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행정기관이 정책을 결정할 때 공청회를 여는데 시민들이 안 오니 형식에 그치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시민교육이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각 직장에서 많은 돈을 들여 유명 강사를 초청해 강연 한 번 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직업교육비를 시민교육이나 시민단체 활동 참여 지원금으로 활용해보자”고 제안했다.

김성탁·김기환·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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