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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5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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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둘만이 남게 되었으나 금련은 술 기운으로 인하여 아까와는 달리 그리 서먹하지는 않았다.

술이라고 하는 것은 자고로 고여 있는 마음을 흐르도록 하는 마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서문경이 금련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다워지는 만큼 금련의 시선도 그윽해졌다.

서문경이 금련에게 넌지시 물었다.

"실례가 되는 질문인지 모르지만 금년에 부인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요?"

"어르신이 보기에 몇 살쯤으로 보이세요?"

금련이 장난기가 묻은 눈길로 반문하며 배시시 웃었다. 하얀 이를 내보이며 양끝이 살짝 꺾이듯이 올라가는 가늘면서도 자그마한 입술 모양이 서문경의 간장을 녹이는 듯하였다. 여자의 발과 입술은 드러난 여자의 성기라고 했던가. 발은 신발을 벗어도 버선과 치마로 가릴 수 있지만 입술만큼은 가릴 수 없는 법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이팔 청춘, 그러니까 열여섯 살쯤으로 보이지만…."

서문경의 목소리는 어느새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호호호, 칭찬으로 들어야 할지, 핀잔으로 들어야 할지. 이래봬도 내 나이가 벌써 스물다섯 용띠라고요. 정월 초아흐레 축시생이고요."

금련이 묻지도 않은 생일과 생시까지 대답해주었다. 마치 어디 가서 사주팔자나 궁합을 따져 보라는 듯이. 아닌 게 아니라 서문경은 그럴 요량으로 금련의 생년월일과 생시를 재빨리 암기해두었다. 스물다섯 용띠라면 경진년 생이 되는 셈이었다. 서문경의 두번째 마누라도 금련과 같은 나이이지만 생일이 7개월 정도 빠른 편이었다.

조금 있으니 왕노파가 술을 데워 가지고 와 새로 술잔을 채웠다. 약간 술 기운이 오른 얼굴로 왕노파가 금련을 칭찬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 부인은 말이죠, 바느질 솜씨만 있는 게 아니라 쌍륙.장기.바둑들도 잘 하고 글씨도 잘 쓴답니다. 제자백가의 학문에도 밝고요. 어디 가서 이런 부인같은 여자 찾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무대 양반은 정말 복도 많지. 여자 복은 재물 복하고 또 다른 모양이지요?"

그러면서 왕노파가 슬쩍 서문경의 표정을 살폈다. 서문경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게 말이오. 나는 재물 복은 있으나 여자 복은 별로 없는 것 같소. 첫번째 마누라가 참 좋았는데 그만 빨리 죽고 말아 애석하오. 그 후에 들어온 여자들도 좀 똑똑하다 싶으면 병에 걸려 골골거리니 집안 살림이 엉망이오. 본부인과 첩을 합하여 네 명이나 있지만 쓸만한 여자는 없는 셈이오."

서문경은 한숨까지 내쉬며 은근히 동정심을 유발하였다. 왕노파도 서문경이 안되었다는 듯이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쓸 만한 여자 있으면 중매를 해드릴까요?"

금련은 왕노파와 서문경의 시선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면서 왕노파가 서문경에게 금련 자기를 소개시켜주려고 교묘하게 일을 꾸민 것은 아닌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마누라 복이 없는 놈이 할멈이 중매를 해준다고 해서 좋은 여자를 얻을 수 있겠어요?"

서문경이 또 한숨을 흘리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내 중매 실력을 아직 모르시나 봐. 이래봬도 이 청하현에서 나만큼 여자 보는 눈이 있는 중매쟁이도 없다고요. 내가 그냥 중매쟁이가 된 줄 아세요? 중매를 잘 하려고 주역도 배우고 사주팔자 보는 법도 익히고 했다고요. 찻집을 하는 것도 말이죠, 따지고 보면 좋은 중매를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해야 어디에 쓸 만한 여자가 있고 참한 남자가 있는지 알 수가 있잖아요? 중매를 하나 해도 정보가 빨라야 한다고요. 정보도 소문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되고 아주 자세한 세정(細情)이어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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