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괴한 모습에 정 담뿍담긴 『E.T.』<외계인>인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수년전 대낮에도 살기가 감도는 뉴욕 타임스퀘어의 어느영화관에서 「리드리·스코트」감독의 『에일리언』을 보았었다.
지구의 우주선이 어느 혹성에 착륙한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승무원 한사람이 동물처럼 숨쉬는 괴기한 식물밭을 발견하고 돌아오는데, 그때부터 이상이 생겨 공같은 육괴가 그의 배를 찢고 터져 나오면서 『깨앵!』무척 신경질적인 세상에도 듣기 거북한 기성을 발한다.
그 괴물은 우주선 구석구석을 숨어다니며 승무원들을 공격해 죄다 죽여버리고 금시에 고릴라 크기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오직 혼자 살아남은 여자승무원이 괴물과 싸워 천신만고 끝에 괴물을 퇴치하고 홀로 유구한 우주를 떠 지구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후부터 나는 못된 인간이라고 여겨지는 사람과 더러 접촉할 때마다 『깨앵!』소리와 함께 『에일리언』을 연상하게되는 버릇이 생겨 대인 친청각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옛날에 인왕산기슭 옥인동에서 9년을 살아 광화문통하고는 스쳐다니는 인연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광화문통을 스쳐갈 때마다 잠깐 내려서 정직하고 푹신한 모습의 아주머니가 경영하는 작은 책방을 찾아 책을 사기도 하고 더러는 빌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건너편 골목길에 있는 중국요리집에 들러 뜨거운 짬뽕을 후루룩 후루룩 먹고 나오는 재미도 있고, 울적한 날 영화감상으로 마음을 달래기도한다.
엊그제, 나는 또 광화문통 지하도를 지나게 됐는데, 컴컴한 지하도에서 『못생긴「이티」사시오. 못생긴 「이티」사시오.』ET 인형을 든 청년이 외치는 소리에 발을 멈추고 보니까 갈색 공룡, 마치 두꺼비같은, 그래도 어떤지 애교가 있는 인형을 쌓아 올려놓고 있었다.
그러나 ET인형은 너무나도 조제었다.
「월트 디즈니」의 후계자라고도 할 수 있는 『ET」의 감독 「스티븐·스필버그」란 젊은 감독의 영화 『크로스 인카운터」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상영됐었다.
마지막 장면에 UFO에서 잠깐 나타나는 우호적인 이성인은 얼핏 보기에 연분홍색 낙지나 문어를 연상케 했으나, 눈이 크고 거대한 이성인 여성에겐 누구나 그 품으로 달려 들어가 안기고 싶은 모성을 느끼게 한 무한한 사랑이 숨쉬고 있었다.
『ET』는 못보았지만, 역시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6백살도 더 먹은 우주인 학자로 지구에 내렸다가 돌아갈 UFO를 놓치고 혼자 떨어졌지만 귀여운 소년에게 구출받고 그소년과의 우정을 그린 테마라고 하는데, 아슬아슬한 고비를 겪다가 소년의 도움을 받아 자전거를 타고 만월을 스쳐 하늘로 올라간다는 아름다운 영화라고 한다. 철저한 사랑, 전쟁부정, 지구상 인간끼리의 전쟁을 난센스로 생각하는 꿈같이 아름다운 영화인 것같다.
어릴 적 어느날 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푹신 끼어 동천에 떠오르는 만월을 본 기억이 있다. 달그림자를 받은 구름들이 휘황찬란해 부모님이 함께 감탄사를 연발하고 계실때 나는 무척 행복했었다. 어쩌면 그때에도 어느 소년이 모는 자전거에 오른 ET가 하늘에서 그 달을 스쳐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광화문통을 터벅터벅 걸어 어느덧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 있었다. 어린이 장난감을 파는 4층에서 내려 중강아지 크기만한 ET인형을 고르니 3천5백원이었다. 어린애같이 ET인형을 사 든 커다란 어른의 희희낙락한 표정이 우습던지 판매원 아가씨가 웃었지만 우호적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2층 공방으로 갈때 나는 ET를 안고 올라가고 오후에 내려올때도 ET를 안고 내려와 제자리인 TV위에 올려 놓는다. 볼수록 정이 들고 어느새 사랑에 굶주린 나의 마스코트가 되어버렸다.
세계 도처에서 사상 최고로 히트한 『ET』를 생각할 때 현대의 지구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걸 짐작하고도 남고, 그런 좋은 선물을 해준 젊은 감독 「스필버그」의 인간성과 귀재에 박수를 보낸다.
◇약력▲1924년 전남 고흥 출생▲44년 동경여자미술학교졸▲54∼72년 홍익대 미술학부 교수 역임▲71년 서울시문화상, 75년 3·1문화상, 7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개인전 19회 개최▲현 예술원 정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