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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100년 만에 미국인 교무 나왔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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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데이슨 터너 교무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어머니는 크리스천이다. 그의 출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를 통해 원불교를 접하면서 지금은 마음이 많이 열렸다고 한다. 아직 미혼인 터너 교무는 상처를 치유하는 ‘라이프 코치’가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뜰에는 눈이 소복했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은덕문화원. 2014년 마지막 달력이 넘어가는 길목에서 원불교 교무를 만났다. 두 손 모아 인사하는 그는 뜻밖에도 흑인이었다. 데이슨 터너(42). 100년 만에 배출한 첫 미국인 교무(원불교 성직자)다. 출가식을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그는 곧 미국으로 떠날 참이었다. 찻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는 ‘나의 상처, 나의 평화’라는 내면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의 가정사는 힘겨웠다. 어릴 적부터 고민했다. ‘내 삶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급기야 대학원에서 긍정심리학까지 전공했다. 그래도 풀리지 않았다. 이런저런 수행 센터도 기웃거렸다. 해결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명상’이란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원불교를 만났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였다. 그는 곧장 필라델피아 원불교 교당을 찾아갔다.

 “문을 여니까 미국인이 스무 명 남짓 있었다. 젊은이부터 시니어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법회는 영어로 진행됐다. 첫 법회를 보자마자 이 근처로 이사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게 뭐였을까. “낯선 사람을 맞는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였다. 그런 온기가 나의 결핍을 먼저 채워줬다. 일본식 선불교 센터에도 가봤지만 그런 느낌을 받진 못했다.”

 화요일에 처음 교당을 방문한 그는 나흘 만에 다시 갔다. 그날은 영어로 된 원불교 교전을 읽었다. “그걸 읽는데 안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어릴 적부터 지녀왔던 나의 고통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오랫동안 내 마음이 듣고 싶어했던 메시지가 그 책에 있었다.” 그는 가만히 생각했다. 이유가 뭘까. “좀 더 지나 알게 됐다. 내가 내 삶의 스토리를 너무 세게 틀어쥐고 있더라. 그걸 놓기 시작하자 내면에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사진 촬영을 위해 뜰로 나갔다. 더 늦으면 해가 떨어질 판이었다. 처마 끝 풍경의 그림자가 눈밭 위에서 달랑거렸다. 터너 교무는 손가락 끝으로 그걸 건드렸다. 그는 ‘용기’라고 했다. “왜 출가했는가?”라는 물음을 예상했는지 먼저 답을 꺼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걸 찾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유관순’을 좋아한다. 미국에서 한국어 공부하다가 ‘유관순’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 용기가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한국땅을 밟자마자 서대문형무소와 천안 유관순 생가부터 찾아갔다. 내게 정말 간절한 것. 나 역시 그걸 찾기 위해 용기를 냈을 뿐이다.”

 12월의 칼바람은 매서웠다. 촬영을 마치고 다시 찻상 앞에 앉았을 때 그는 손을 호호 불었다. 올해가 가고 새해가 오고 있었다. 터너 교무는 우리의 마음도 똑같다고 했다. “예전에는 삶은 고통과 불만의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마음공부를 만나고서 그런 생각의 달력을 넘길 수 있었다.

 지금은 ‘Everything is the creation of mind(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게 내가 만난 삶의 새로운 달력이다. 바깥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내 안의 패러다임을 바꿔야한다는 걸 배웠다. 그럴 때 비로소 삶의 겨울이 가고 봄이 오더라.”

 인터뷰를 마쳤더니 어둑어둑했다. 대문을 나설 때 그의 답변이 떠올랐다. ‘새로운 달력을 맞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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