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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재회 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천만 이산가족 재회 추진 위원회」가 9일 서울에서 결성 대회를 갖고 정식으로 발족했다. 이로써 대한적십자사가 주관해온 남북한 이산가족 재결합 사업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북 5도민 연합회를 비롯해서 이산가족 대표들이 중심이 된 재회 운동은 우리 국민의 자주적인 통일 의지를 집약하는 민간 운동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받아야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곧 돌아오마고 손짓하고 가족과 고함을 등진 혈육들이 재회의 날을 기다리다 어언 반세기가 지났다. 그 동안 남북적십자 회담 등 대화의 기간도 있어 한때나마 재회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대나 희망은 물거품이 된지 오래된다.
강대국들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생긴 것이 이산가족 문제며 이를 한결 가속화한 것은 김일성 집단이 저지른 6·25사변이었다.
이산가족 문제가 이처럼 원초적으로 우리의 뜻이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산가족들의 비통함은 한결 큰 것이다.
이산가족 재회 추진 위원회 (회장 조영식)는 남북으로 흩어진 혈육들의 재결합을 위해「이산가족의 날」 (8월12일) 행사를 벌이고 국제기구와 협조 이산가족 실태 조사와 학술 연구 등 관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펴나가기로 했다. 우리는 먼저 추진위의 이런 사업들이 온 국민의 성원 속에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날이 하루라도 앞당겨지기를 바라고자한다.
남북한 이산가족 재회 사업은 71년8월12일 대한적십자사의 제의에 따라 남북적십자 회담이 열리면서 그 중심 의제가 된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산가족 재회 문제가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순전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해결할 것을 제의했으며 그 같은 기본 입장에는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나 남북 대화가 그들의 정치 목적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자 북한은 73년8월 모든 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말았다. 북한측의 대화 기피 자세로 말미암아 이산가족의 재회 운동도 좌초하고만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국내외의 여건이 어렵고 무엇보다 북한측의 태도가 얼어붙은 채 우리측의 요구에 호응할 기미가 없는 이상 재회 운동은 쉽게 성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는 사정은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북한이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조직화되고 통제된 사회라는 것은 온 세계가 알고 있다. 미국무성이 최근 발표한 연례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해 4월부터 주민들의 국내 여행을 엄격히 규제했으며 주민들이 공적으로건 사적으로건 주거지를 벗어나 여행을 할 때면 반드시 통행증을 받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통제된 사회는 체제 유지를 위해 통제의 고삐를 한층 죄면 죄었지 우리의 대화 제의에 선뜻 응해올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북한측의 태도가 굳으면 굳을수록 우리는 그들을 대화의 광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이산가족 재결합 추진위는 이 운동이 행사에 머물지 말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흩어진 혈육들과의 재회를 실현하는 사업을 추진하자고 다짐하고 있다. 언제까지고 남의 탓만 하지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대로 해보자는 비장감을 여기서 느낄 수 있다.
결의문에서 나온 것처럼 이산가족 가운데 많은 사람은 전추의 한을 품은 채 유명을 달리해야할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들 생전에 가족 재회의 기쁨을 맛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추진위가 벌이는 갖가지 사업이 이산의 종식과 통일을 앞당기는데 하나의 주춧돌로서 기여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혈육의 재회는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는 인륜이며 인도임을 알아 북한측은 이산가족들의 피맺힌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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