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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BOX] 박 반장, 김 회장 … 최불암, 데뷔 후 줄곧 노역 전문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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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최불암은 연기 인생 첫머리부터 노역(老役) 전문 배우였다. 1958년 서라벌예대 연극과에 입학한 그는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연극동아리를 꾸렸다. 첫 번째 작품은 ‘저 하늘 아래’였고 그가 연출을 맡았다. 연습을 하던 중 그는 동료 배우의 연기를 지도할 일이 있었는데, 이를 지켜본 지도교수가 연기를 권했다. 그는 실제 나이보다 서른 살 가까이 많은 40대 후반의 북한예술단 단장을 맡았다.

 이후 그는 연극이든 드라마든 족족 노인으로 나왔다. ‘수사반장(사진)’에선 50대 박 반장을 맡았다. 당시 김상순·조경환·남성훈 등 30대 형사를 연기한 배우들은 최불암과 동년배다. ‘전원일기’를 시작할 무렵 양촌리 김 회장의 극 중 나이는 60대였다. 그의 나이 마흔에 맡았던 배역이다. 심지어 서른 즈음 출연한 MBC 드라마 ‘아버지’에선 일흔 먹은 정년 퇴직한 아버지를 연기했다.

 아무리 노안이라도 스무 살, 마흔 살이나 많은 역을 제 것처럼 소화하기란 힘든 법이다. 그래서 얼굴을 늘 숨기고 살아야 했다. 그의 얼굴엔 세월의 차이만큼 두꺼운 분장이 덧입혀졌다. 그는 “머리에 흰 칠을 하고 메이크업을 매일 했다. 흑백이어서 분장으로 나이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가 드물었던 시대 탓도 있다. 6·25전쟁을 겪으며 1920~30년대생 배우들이 귀해져서다. 애초에 연기자 자체가 드물었으니 그의 노역엔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었다.

 최불암이 제 나이로 처음 출연한 드라마는 97년 MBC ‘그대 그리고 나’다. 그는 허풍이 심한 왕년의 마도로스 ‘캡틴 박’을 연기해 화제가 됐다. 연기를 시작한 지 40년 만이다. 그는 “처음으로 제 모습을 보인 건데 기자들은 ‘최불암의 변신’이라고 쓰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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