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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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만 자란 내게는 옛 서울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도 모른다.
봄이면 지금의 옥인 아파트지구에 흐르고 있던 계곡 물을 마셔 가며 인왕산에 올라가고 여름이 되면 한강의 인도교 밑에서 수영할 수 있던 서울이 내게는 좋았다.
새벽에 아버지 손을 잡고 종로에서 전차를 타고 동대문밖에 가서 소(우)피를 마실 수 있던 그 옛날의 서울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어머니의 꾸중을 들어가며 청계천 밑에 내려가 물장난을 할 수도 있었다.

<자랑스런 기분 잠깐>
그래도 요새 강변도로를 따라 성수대교를 지나 천호대교에 이르는 서울에서 가장 쾌적하고 아름다운 드라이브 웨이를 조석으로 차를 타고 다니면 역시 근대화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침에는 대양이 강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강물을 곱게 물들여 놓는다.
저녁 너울 때에는 또 붉게 타오르는 하늘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듯한 흐뭇한 기분을 안겨준다. 그리고 또 봄철이면 도로변에 즐비한 벚꽃들이 반겨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새삼스레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잠시뿐이다.
천호교에서 시내 쪽으로 돌아오는 저녁 러시아워 때에는 영동 교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에 밀려 10분 이상이 지체된다.
영동교를 따라 남북으로 뚫린 길은 6차선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와 교차해가며 동서로 뻗친 강변도로는 2차선뿐이다. 그러니까 6차선상의 교통량이 2차선상의 교통량보다 배나 많다 하더라도 신호가 떨어지는 시간이 똑 같다면 강변도로 쪽의 차가 더 밀릴 수밖에 없다.
또한 길이 2차선뿐이니까 회전하는 차나 직진하는 차나 한 줄로 서게 마련이다. 그래서 영동 교에서는 청신호가 떨어져도 한쪽만 발진할 수 있고 맞은편은 정지한 채로 있어야한다. 그것은 꼭 1차선 밖에 없는 시골길에서 가는 차가 다 지나야 오는 차가 발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이곳에서는 회전하기도 어렵게 되어있다. 자칫하면 중앙선을 침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덤프차나 중장비 차라도 회전할라치면 큰일이다. 신호가 도는 도중에 끊기기도 일쑤인 것이다(러시아워 때에는 중장비 차는 강변도로를 달리지 못하도록 한다는 신문기사를 본 것 같은데 그 후에도 여전하다).
이래서 청신호가 떨어져 있는 동안에 통과할 수 있는 차도 고작 서너 대 밖에 안 된다. 그런지 반년이 넘었다. 그래도 신호등 시스템을 바꾼다거나 좌우회전을 못하게 한다든 가 하려는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영동교를 건너 성수대교를 지나기가 무섭게 또 하나 울화를 치밀게 만드는 게 있다. 톨게이트다. 그것은 강변도로의 온 코스를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는 톨게이트다.

<체증 더해주는 신호>
강변도로는 차를 타는 사람들만을 위하여 있다. 그래서 인도도 없다. 그런 도로의 공사비며 관리비를 모든 시민에게 다같이 부담시키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따라서 수혜자부담의 원칙을 따라 톨게이트를 세웠다.
당초의 취지도 그랬을 것이다. 하나 공사비도 웬만큼은 뽑아졌을 텐데 여전히 찻길을 막고 돈을 걷어내고 있는 것을 매일같이 보고있으면 그 돈을 서울시에서는 뭣에 쓰고 있는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톨게이트가 있는 구간은 강변도로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곳이다.
더우기 그 톨게이트는 가뜩이나 붐비는 찻길을 더욱 붐비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톨게이트 박스는 2개가 있다. 그러나 일단 톨게이트를 지나면 길은 1차선이 된다. 그러니 보틀네크 현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공연히 교통만 더욱 붐비게 만들고 있는 톨게이트는 남산의 각 터널들에도 있다. 그 터널들의 시설이 훌륭하다면 또 그런 대로 눈감아 둘 수도 있겠다.
나는 어쩌다 이 터널을 지날 때면 눈을 딱 감는다. 매연으로부터 눈을 보호하자면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숨도 되도록 덜 마시려 애쓰지만 그것만은 불가능하다.

<터널 지날 땐 눈감아>
이렇게 해서 간신히 시내로 빠져 들어오면 『시민에게 봉사하는 서울특별시』등등의 슬로건을 내건 시청이 압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통행인에게 불편을 끼쳐드려 미안합니다…』라는 표시 판 한 장으로 모든 횡포가 용서되는 듯이 여기고있는 지하철공사장을 연상시켜주는 것이다.
도시의 개발이며 발전이란 그저 고층건물을 세우고 새 길을 내고 산을 깎아 주택이 들어서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살기 좋게 하고 보다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한다. 모든 시민이 아름다운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야 도시의 매력도 생기고 도시에 대한 애착도 생긴다.
그러나 지금까지 너무나도 서울의 매력을 앗아가는 도시계획으로 일관해왔던 것만 같다. 지금 서울에는 많은 자랑거리들이 생겨났고 또 계속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박태원이나 이상이 살던 때의 서울 보다 오늘의 서울이 더 아름다워지고, 더 살기 좋아지고, 더 정이 가는 도시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3·1 고가도로를 도심지에서 진입시키지 말고 동대문 밖에서 진입시키기만 했어도 좋았다. 그토록 많은 다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았다면 모든 다리의 모양을 하나로 통일시켰으면 좋았다. 한강 개발에 대한 비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잠수교를 건설하지 않아도 좋았다.
너무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그 가장 딱한 본보기를 우리는 영동에서 보게된다. 서울시가 처음 강남에 눈을 돌렸을 때만해도 얼마든지 멋진 위성도시를 만들 수가 있다.
바둑판처럼 정연한 도로망과 울창한 연지대 사이사이에 펼쳐지는 생활환경을 얼마든지 멋지게 꾸며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녹지 간 곳 없는 강남>
그런지 근 10년. 오늘의 영동은 학교가 새로 들어갈 여유도 없을 만큼 빡빡히 술집과 여관, 그리고 고층아파트들만이 추악하게 들어서 있다. 결국 강남개발은 땅값만 올리고 복부인들만을 즐겁게 만들고 끝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서울의 시민들에게는 발언권조차 없었다. 서울시란 따지고 보면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가족회사나 다름이 없다. 또 그렇게 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시민들은 서울시에서 돈을 어떻게, 뭣에 쓰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세금을 바치는 의무만 있지 권리는 별로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 정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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