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혈혈단신' 어르신에 온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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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하자는 훈훈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외로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다. 그래서인지 이맘때 뉴스에서는 “자녀는 물론 주변에 친인척도 없는 혈혈단신의 노인들을 위해 아파트 부녀회에서 도시락 배달 봉사를 펼쳤다” “쪽방촌에서 혈혈단신 추위와 싸우는 이들에게 여기저기에서 사랑의 손길이 이어졌다”와 같은 기사가 쏟아진다.

 위에서와 같이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홀몸을 가리켜 ‘혈혈단신’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혈혈단신’을 ‘홀홀단신’으로 잘못 쓰는 예가 적지 않다. “홀홀단신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홀홀단신 서울로 올라왔다” 등과 같은 경우다.

 ‘혈혈단신(孑孑單身)’의 한자를 알면 틀리지 않고 쓸 수 있다. ‘홑 단(單)’에 ‘몸 신(身)’이 만난 ‘단신(單身)’은 ‘혼자의 몸’을 뜻한다. ‘혈혈(孑孑)’은 ‘외로울 혈(孑)’ 두 글자가 붙어 ‘매우 외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혈혈단신’은 매우 외로운 혼자의 몸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고 나니 ‘홀홀단신’이 어색한 조합임이 드러난다. ‘홀홀단신’은 ‘짝이 없음’이나 ‘하나뿐임’을 의미하는 접두어 ‘홀’을 겹쳐 한자어 ‘단신’과 붙인 형태다. 다시 말해 한자어와 순우리말이 결합한 어색한 구조다.

 비슷한 표현으로 “그는 정당과 조직을 버리고 혈연단신으로 새 출발을 선언했다”에서처럼 ‘혈연단신(孑然單身)’을 쓸 수도 있다.

 ‘혈혈단신’이란 표현을 사용할 때 간혹 “그는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뒤 혈혈단신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는 아내와의 사별 후 큰 결심을 한 듯 혈혈단신 절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와 같이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혈혈단신’은 외롭고 힘들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따라서 스스로 혼자가 되기를 선택한 성직자나 자신의 의지로 홀로 여행을 하는 배낭여행의 경우에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주의해 사용해야 한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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