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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 '온라인 거래법'] 상. 사기판매 알아도 "처벌법이 없어요"<메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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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주부 송수미(38)씨는 최근 유명 인터넷 경매사이트(오픈 마켓)에서 접착식 브래지어인 '이브스 브라'를 샀다가 낭패를 봤다. 제품이 독일산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졌다고 광고됐으나 실제는 국내산 레진 계통 실리콘이 사용돼 허위.과장 광고로 당국에 적발됐다. 이에 따라 홈쇼핑 업체 등은 이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고 그간 사간 사람들에게 전액 환불도 해줬다.

그러나 송씨가 구입한 사이트에선 "오픈 마켓은 개인 간 거래를 중개만 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설명하고 끝이었다. 오픈 마켓이란 누구나 등록하면 제품을 사고팔 수 있게 열어 놓은 인터넷 사이트를 말한다. 일종의 사이버 시장이다.

실제로 옥션.G마켓.다음온켓 등 오픈 마켓 사이트에선 이달 초까지도 이 브래지어가 똑같은 광고로 팔렸다. 한 유명 사이트에서는 아직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온라인 소비자 보호를 위해 2002년 제정된 법(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소법)에 최근 폭발적으로 커진 오픈 마켓을 제재하는 규정이 전혀 없는 까닭이다.

전소법은 또 이 브래지어 광고를 게시한 인터넷 쇼핑몰만 처벌할 뿐 정작 이 제품과 광고를 만든 제조업체에 대한 제재 조항은 없다. 인터넷 쇼핑몰 관계자는 "제조업체들이 이런 법의 허점을 악용하고 있어 허위광고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거래법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다. 온라인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며 거래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관련 법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은 7월 거래액이 8920억원으로 월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온라인 쇼핑몰 업체 수도 4000개를 넘어섰다.

온라인 쇼핑몰 거래액은 전소법이 제정된 2002년 상반기 2조8032억원에서 올 상반기 4조8696억원으로 3년 새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같은 기간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전자상거래 민원은 4631건에서 1만2963건으로 세 배가량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전소법은 법이 생긴 지 3년 만인 올 3월에야 총 45개 조항 가운데 17개 조항의 일부 항목이 개정됐을 뿐 여전히 허점투성이다.

온라인 거래에서 가장 빈번히 이뤄지는 반품의 경우 반품 비용 부담 규정이 모호해 이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가격비교 사이트에 값싼 '미끼' 상품을 올려 소비자들을 끌어들인 뒤 물건값만 받고 사라지는 사기 사건이 줄을 이어도 가격비교 사이트에 대한 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만이 아니다. 업체들도 온라인 특성을 무시한 규제 때문에 속병을 앓고 있다. 예컨대 온라인 사이트에서 중고차 판매자와 구매자 간 거래를 알선하려 해도 200평의 실제 매장을 갖춰야 한다. 인터넷으로 법률상담을 해주는 사이트들은 오프라인 법인 '변호사 알선행위 금지'조항(변호사법 34조)에 묶여 개점휴업 상태다.

온라인 업체들은 도용 카드로 제품값이 결제된 경우 오프라인 식당 등에 적용하는 본인 서명 확인 의무에 걸려 무조건 책임을 뒤집어 쓰고 있다.

조그만 소호몰을 하나 열려면 세무서에 사업자 신고, 구청에 통신판매업 신고를 하고도 전화국에 부가통신사업자 신고를 따로 해야 하는 등 중복 신고를 해야 한다. 또 전소법의 하위 규정인 공정위 고시에는 전자상거래 업체의 환불이 늦어질 경우 그 기간의 이자율이 연 25%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고시와 유사한 법(소송촉진특례법)이 2003년 4월 위헌 결정을 받았는데도 주무 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거래가 소비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는 만큼 관련 법규를 온라인 시대에 맞게 대폭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렬.윤창희.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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