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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포장마차 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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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술잔위에 쏟아지는 별을 보며 하늘을 마신다. 인생의 푸른 꿈 펼치는 포장마차…』
어느 여가수가 경쾌한 노래로 예찬론을 폈고, 그래서 그들의 단골 주제가가 됐다는 『포장마차』-.
흔들리는 칸델라 불빚속에 김이 무럭무럭나는 오뎅 국물과 지글거리는 꼼장어 냄새, 술꾼들의 취기어린 노래와 정담이 오간다.
도시인의 애환과 낭만마저 감도는 포장마차-.
어둠이 깔리는 서울 북창동 골목.
희뿌연 입김을 날리며 바바리깃에 고개를 잔뜩 파묻은 김두직씨(31·D항공사 대리)가 골목 어귀를 돌아 포장마차 자락을 들치고 들어선다.
『소주 반병에 닭똥집 세 개-.』
왼손은 여전히 호주머니에 찌른채 김씨는 소주 세잔을 연거푸 마신 뒤 안주를 맛있게 씹는다.
술과 안주값 1천3백원.
10여분만에 포장마차를 나서는 김씨는 발걸음마저 가볍다.
포장마차는 계절과 장소를 별로 타지 않는다.
쌀쌀한 날씨면 더욱 제격이고 2평 남짓한 공간과 행인이 많은 길목이면 으뜸으로 친다.
이 때문에 서울역 부근과 청량리역 광장, 용산·강남터미널 부근, 신사동과 신림동 네거리, 구로공단 일대에는 20∼30여개의 포장마차가 몰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신세계 백화점 뒷골목과 북창동 등은 전통적으로 이름 있는 곳이고 과천과 개포동 등 아파트촌 포장마차는 개발붐을 타고 등장한 신참들이다.

< 직업 - 기업화 추세 >
포장마차를 즐겨 찾는 「포장객」들의 유형은 퇴근길에 가볍게 한잔 걸치고 가는「딱 한잔파」와 술도 집이 싫어 이곳저곳 포장마차를 유람하는 「포마돌이」맥주나 양주 등을 마셔 얼큰해진 기분에 마지막을 포장마차에서 끝내는「입가심파」등으로 대별된다.
K개발에 근무하는 전기탁씨(32)는「포마들이」형.
노총각인 전씨는 퇴근 후 거의 매일 동료·친구들과 어울려 포장마차를 찾는다.
『단골집을 갖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 맛을 개척하는 것도 술꾼에겐 큰 재미』라는 전씨는 봉급의 절반 이상을 포장마차에 투자(?)한다고 했다.
「딱 한잔파」는 최근 부쩍 늘어난 오너 드라이버나 애처가 남편들.
남대문 지하도 옆에서 부부가 포장마차를 하는 김승씨(30)는 『매일 밤 9시30분쯤엔 신분을 밝히지 않는 점잖은 신사가 자가용을 몰고와 어김없이 곰장어 1마리와 소주 세잔을 비우고 간다』며 이젠 단골이 되어 값도 2백원씩 깎아주고 있다고 했다.
가구점을 경영하는 이덕구씨(39·서울 화양동)는 1년에 한번씩 부부 동반으로 포장마차를 찾는다.
결혼 기념일인 11월25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총각시절 청량리역전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부인과 그때 추억을 이야기하며 부부애를 다진다』는 이씨는 벌써 13년째 포장마차의 단골.
포장마차가 술꾼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여대생 이정희양(23·E여대3년)은 데이트 코스로 신세계 백화점 뒷골목을 즐겨 이용한다.
『남자친구가 소주 몇잔을 마시는 동안 떡볶기나 해삼 등 군것질을 하는 것도 괜찮다』는 이양은 포장마차에선 서민들의 체온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애착이 간다고 했다.
길거리를 무단 점령한 포장마차가 이젠 점차 직업화 또는 기업화 하순철 하루 4만여원는 추세.
특히 영동일대 아파트촌엔 얼기설기 건물을 엮어「포장을 두른 술집」이 성업중이고, 기존 술집이 벽을 헐어내고 포장을 둘러 만든 억지 포장마차도 많다.
3, 4개의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사장도 있고 요즘은 대학생 주인도 흔히 볼 수 있다.
포장마차의 하루 매상은 대개 5만윈에서 10만윈선까지. 영동 D카바례 앞에서 포장마차를 벌이고 있는 김경영씨(45·여)의 경우 하루매상 6만윈선, 재료대를 빼면 4만원정도 순수입이다.
김씨는 이 수입으로 장남의 대학 등록금과 고교생 딸의 학비를 거뜬히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포장마차의 불청객은「도로교통 방해죄」단속. 단속원과 숨바꼭질을 해야하고 재수 없으면 즉심에 넘겨져 벌금 4천원씩을 물어야 한다.
목이 좋은 곳에선 엄청난 자릿세가 은밀히 거래되기도 하고 신참자가 침범하려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강남 터미널 호남선 앞에선 하오팀(하오 5시∼11시)과 새벽팀(새벽 3시∼8시)이 구분돼 사이좋게 영업을 벌인다.
포장마차를 차리는데 드는 비용은 규모에 따라 15만∼20만원 정도.
왕십리 중앙시장에선 리어카·포장·화덕 등 포장마차 도구와 안주거리까지 전문으로 팔아 「포장마차 시장」으로 불릴 정도다.
포장마차의 술과 안주 값은 소주 1병에 6백원(1잔엔 1백50원)이고, 참새구이(1꽂이 1천윈), 곰장어(1꽂이 1천윈), 닭똥집(l인분 1천윈), 오뎅(1접시 5백원) 등 대개 1천원 이내.
기본단위가 얼마 안된다고 이것저것 시켜 먹으면 결코 만만챦은 비용이 나온다는 것이 포장마차를 애용하는 주당들의 지적이다.
비록 무허가 일지언정 옥호만은 그럴 듯 하고 애교를 담고 있다.

< "새벽인생" 들의 벗 >
「청실홍실」「황금마차」「오손도손」「너랑나랑」 「포마월드컵」「포마주식회사」등은 어엿한 술집 냄새를 풍기고 「우리동네 제일 큰집」 「일단 와보시라니깐요」「너한잔 나한잔 주인도 한잔」은 애교와 재치가 넘친다.
「가다가 또 오세요」「울면서 간다」며 손님을 부르는 포장마차도 있다.
포장마차의 내력은 70여년전 우미관 등 극장주변에서 우동·메밀국수 등을 팔았던 「곤약장사」가 시초였다는 것이 조풍연씨(69·언론인)의 회고다.
땅거미가 몰려오면 어김없이 나타나 샐러리맨들의 출출한 속을 채워주는「번지없는 주막」-
지난해 야간통금이 없어진 뒤로는 「새벽인생」들의 벗도 되어 여명의 골목길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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