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전」은 프로바둑발전의 견인차|파격적인 기전료인상 의의와 바둑계 현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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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 바둑계도 이제 수졸(초단)에서부터 인비(9단)까지의 바둑구품을 고루 갖추었다. 여기에다가 일본에서의 조치훈9단의 활동, 또「왕위전」개최규모의 파격적인 인상(2천5백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인상)등으로 바둑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왕위전」상금인상의 의의, 국내의 바둑현황, 당국의 지원문제 등을 우리나라 바둑계의 원로 조남철8단과 조훈현왕위, 그리고 「왕위전」해설을 맡고 있는 김수영6단 등으로부터 들어본다.
조8단=「왕위전」의 5천만원 규모는 흡족한 액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실정과 다른 신문기전과 비교하면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배려를 한 중앙일보에 국내 기사들을 대표해서 우선 감사를 드립니다.
조왕위=「왕위전」의 상금 인상이 발표된 뒤 많은 기사들로부터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왕위」만 지키면 상당한 상금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하는 인사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문기전의 상금인상은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83명 전체 기사들의 문제니만큼 이번 「왕위전」의 상금인상은 정말로 반갑고 감사할 일이지요. 사실 그 보도가 있은 뒤 기사들의 눈빛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 같아요.
조=우리나라 바둑의 발전도 「왕위전」이 시작되면서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어요. 프로기사의 세계엔 아무래도 상금이 중요하고 큰 상금을 내건 「왕위전」이 탄생하면서 기사들이 바둑에 쏟는 힘도 대단했으니까요.
김=76년 다른 신문기전이 3백만원 수준일 때 「왕위전」은 1천만원으로 올려 기계와 바둑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것이 자극이 되어 다른 신문의 기전료도 조금씩 따라 오르곤 했는데, 아무튼 「왕위전」이 한국의 프로바둑 발전에 견인차 노릇을 한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인 것 같아요.
조=우리나라 바둑인구도 상당히 늘지 않았습니까. 4백만명으로 추산하는데, 그렇다면 인구의 10%가 바둑을 둔다는 얘기가 돼지요. 한가지 일에 이만한 인구가 즐기고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김=바둑은 남녀노소 동락의 유일한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신수양도 겸할 수 있는 건전한 것이고요.
조=바둑이 주는 효과는 상당합니다.
바둑은 「생각하는 것」과 「반성하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생각하는 버릇은 침착성을 키워주고 추리력을 키우지요. 추리력은 또 앞을 내다보는 안목을 길러 줍니다.
바둑은 또 억지가 통하지 않아요. 순리대로 두어야하고 무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생살이에 좋은 교훈이 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한참 가치관이 정립될 청소년들에게 바둑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조=바둑만큼 자유와 평등의 게임이 없다고 봐요. 3백61칸 바둑위에 어디를 두어도 자유요 또 꼭 번갈아 가며 한 수씩 두니까 이것처럼 더 평등한 게임이 있겠어요.
김=바둑이 청소년 정서순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실제가 증명하고 있어요. 역시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있는 「학생왕위전」을 보면 해마다 그 입상자들이 모두 학교성적도 우수하고 행동도 모범생들이에요.
조=최근엔 여성 바둑인구도 부쩍 늘어난 것 같아요.
김=여자고교나 대학에 바둑클럽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여성바둑팬을 4만명 정도로 잡고 있지요. 전체 바둑인구의 1%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한국기원에도 여성기우회가 따로 있어 회원이 2백여명이나 됩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친선대국을 갖고 있지요.
조=주부가 바둑을 둔다면 가정이 퍽 화평스러우리라 믿어요. 주부가 남편이나 자녀와 바둑을 둔다는 것은 얼마나 정겨운 광경입니까. 제 주변에서도 그런 화목한 가정이 있습니다만….
김=근년들어 바둑붐은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아요. 일본의 1천만 바둑인구는 말할 필요없고 유럽·미주·오스트레일리아·아프리카까지 바둑인구가 부쩍부쩍 늘고 있다는 외신입니다. 모스크바에서 바둑인구가 1만명이란 일본의 한 조사발표가 있었습니다.
조=그런데 주목할 일은 세계각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둑을 석권하고 있는 사실이에요. 일본이 세계에 바둑을 보급했다면 현재 각국의 바둑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오는 2월 일본 오오사까에선 제5회 세계아마추어바둑대회가 열리는데 세계 32개국에서 32명의 대표가 참가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상당한 나라가 우리나라 사람을 대표로 내보내고 있어요.
김=특히 유럽 바둑계는 한국인이 완전히 석권하고 있습니다. 서독의 이창세·유종수씨, 프랑스의 임갑씨, 오스트레일리아의 한상대씨 등이 모두 그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입니다.
유종수씨는 지난해 유럽지역 5개의 바둑대회를 석권했고, 한상대씨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픈바둑대회서 3년 계속 우승했지요. 특히 프랑스의 임갑씨는 프랑스 국가대표선수로 프랑스에선 임씨가 바둑의 대명사같은 존재입니다.
조=서독엔 도이치 고 차이퉁이란 바둑잡지가 있는데 그 잡지의 편집장이 남량호씨란 한국인이에요.
김=미국엔 재미 일본기원이 주최하는 「본인방전」이란 기전이 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타이틀을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지요. 헝가리에선 최근 한국기원에 86년 제26회 유럽아마추어바둑대회를 개최하는데 꼭 한국대표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유고엔 이미 우리대표가 다녀온 적이 있고요. 바둑이 좋은 민간외교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본보기입니다.
조=우리나라도 당국이 이게 바둑에 관심을 갖고 지원의 방안을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민간기업에서도 적극 후원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하고요. 아뭏든 이번 「왕위전」의 상금인상은 우리나라 바둑발전에 큰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석자>
조남철8단<한국기원 부이사장>
조훈현9단<왕위>
김수영6단<왕위전기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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