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디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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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일러스트=강일구]

Q 요즘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의 루블화가 폭락하면서 러시아에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고 합니다. 유가가 하락하는데 왜 러시아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건가요. 그리고 디폴트가 무엇인데 다른 나라 금융시장에까지 큰 영향을 주는 건가요.

A 보통 상품값이 떨어지면 소비자 입장에선 좋을 겁니다. 예를 들어 1000원짜리 과자가 팔리지 않아 몇 달 뒤 500원으로 떨어지면 소비자는 예전엔 1000원에 한 봉지밖에 못 샀는데 이제는 두 봉지나 살 수 있으니 이익일 거예요. 그런데 과자 회사 입장에선 어떨까요. 이 회사가 과자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700원이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과자회사는 한 봉지 팔 때마다 200원씩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결국 과자회사는 손해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겠지요.

원유 수출로 먹고 사는 러시아 큰 타격

 원유도 마찬가지예요. 동전의 양면처럼 효과가 정반대입니다. 유가가 떨어지면 한국처럼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국가는 큰 이익입니다. 러시아와 중동·남미 등 산유국은 달라요. 생산원가보다 유가 시세가 떨어지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요즘 국제 유가는 6월 최고치보다 50%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이렇다 보니 러시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요.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총수출의 67%를 차지하고 재정 수입에서 원유 관련 세수가 50%를 넘습니다.

 러시아 경제가 불안하다 보니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60% 가량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불안하면 왜 그 나라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느냐고요. 경제가 안정적일 때는 러시아에 많은 나라에서 투자 자금이 들어올 겁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만든 러시아 관련 펀드는 러시아 증시 등에 투자를 합니다. (안타깝게도 국내 러시아 관련 펀드의 올해 수익률은 -30~-50%에 달합니다.)보통 한국 투자자가 맡긴 돈을 국내 운용사가 받아서 러시아 금융상품 등에 투자할 겁니다. 이때 한국 원화가 러시아 루블화로 환전돼 투자됩니다. 그런데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떻겠어요. 투자자가 서둘러 돈을 빼려고 할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루블화 가치와 러시아의 각종 금융상품 값이 내릴 테니까요. 결국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러시아 금융시장에서 돈을 빼서 국제 공용화폐인 달러로 바꾸려고 할 겁니다. 이렇다 보니 루블화 값은 갑자기 급락하게 됩니다. 최근 루블화 값이 하루에 19%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루블화 가치 폭락하면서 러시아 현지에선 달러화와 공산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일반 시민이 앞다퉈 루블화를 달러화와 유로화로 바꾸면서 일부 은행 지점의 경우 보유한 외화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예요.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비싼 공산품을 미리 사두려는 고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애플이 러시아에서 온라인 판매를 중단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애플이 온라인 판매를 중지한 이유는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제품 가격을 재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 나라의 화폐가치는 뚝 떨어지고 나라 곳간에 세계 공용화폐인 달러가 바닥이 나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나라 빚을 갚지 못할 위기에 빠질 겁니다. 환율이 1달러에 30루블이었는데 1달러에 60루블로 바뀌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전에 100달러 빌렸던 사람은 3000루블만 지불하면 됐지만 이제는 6000루블이나 갚아야 할 겁니다. 환율 탓에 빚이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나게 된 셈이지요. 여기다 러시아에 돈을 빌려준 곳에서 돈 떼일 것을 우려해 빨리 돈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당장 갚지 못하면 훨씬 더 높은 이자를 내라고 하고 있지요.

 또 나라 곳간(재정)에 가치가 폭락한 루블화만 쌓여있고 빚 등을 갚아야 할 달러화는 곧 바닥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현재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로 추산되는 데요. 한국의 외환보유액(3631억달러,11월 말 기준)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는 1년 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러시아의 장·단기 외채와 러시아를 빠져나가는 외국인 자금도 이 정도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결국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이 ‘0’ 또는 마이너스인 상태로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지요.

 나라가 이렇게 되면 애초 계약대로 원금이나 이자를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이를 채무 불이행이라 해서 영어로 디폴트(default)라고 합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하게 됐다고 선언하는 걸 ‘디폴트 선언’이라고 합니다. 한 나라가 디폴트 선언을 하는 건 국가가 파산에 빠졌다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보통 디폴트 선언을 하기에 앞서 ‘모라토리엄(moratorium, 채무상환 유예)’이라는 응급조치가 있어서 ‘디폴트 선언’이 자주 일어나진 않습니다. 라틴어로 ‘morari(지체하다, 늦추다)’에서 파생된 말인 모라토리엄은 제때 빚을 갚기 어려울 때 빚 갚기를 미루는 것을 말합니다. 국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법정관리를 받는 기업처럼 채무조정절차를 밟게 됩니다. 러시아는 이미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모라토리엄에 빠졌습니다. 한국도 1997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디폴트나 모라토리엄까진 가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경제 흔들리면 신흥시장도 위험

 러시아 경제가 흔들리면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위기는 바이러스처럼 이웃 나라에 전염됩니다. 세계 전문가는 러시아의 경제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에서 자본 유출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요즘 세계 시장에서 큰 손은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자금입니다. 세계 각국에 투자를 하고 있지요. 그런데 만약 러시아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어떻게 할까요. 러시아와 비슷한 신흥국도 자금 위험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서둘러 돈을 뺄 겁니다. 이게 신흥국 자본유출입니다. 큰 손이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러시아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외국인이 증시에서 돈을 빼니 증시는 폭락할 겁니다. 그런 다음 이 돈을 달러로 바꿔 가져가려 할 테니 그 나라 통화 가치도 급락하겠지요. 이렇게 악순환이 되면 세계 경제는 큰 위험에 빠집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글=김창규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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