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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러 학교 가는 건 아니잖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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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겨울방학이다. 그리곤 2월초 개학. 그런데 개학하자마자 일주일 이내에 다시 봄방학에 들어가는 학교가 대다수다. 주요 학사 일정은 12월에 모두 마쳤으니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에 낀 수업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교육부는 이같은 학사 공백을 메꾸자는 취지로 지난달 “2월 출석일을 최소화하고 5월과 10월에 단기방학을 실시해 학사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내용을 담은 ‘학사 운영 다양화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당장 이번 겨울방학 시작을 1월로 늦춰 2월 출석 일수를 최소화하는 방학분산제 실시를 권고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는 현행 방식도, 또 정부와 교육청이 새로 도입하겠다는 방학분산제에도 모두 부정적이다. 왜일까.

학생은 영화감상, 교사는 행정처리

봄방학이란 종업식을 마친 2월 중순부터 3월 개학일까지 2주 남짓 학년말 방학을 의미한다. 학부모 대부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학사일정”이라고 말한다. 학부모 김민주(45·서울 광진구)씨는 “내년 2월 2일 겨울방학 개학을 하고 4일 뒤인 6일 봄방학을 시작하더라”며 “딱 4일 다닐 거면 왜 굳이 학교에 나오라는지 알 수 없다”고 불만스러워했다. 그 기간은 학년이나 학교 상관없이 대부분 버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체험학습 등을 이유로 아예 학교에 안 나오는 학생도 많다. 김씨 아들인 초등학교 4학년 최민우 군은 “(20명 정원인) 한 반에 대여섯 명만 나온다”며 “수업 안 하고 영화를 보여주는데 친구도 많지 않아 재미가 없다”고 했다.

교무실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이모 교사는 “2월은 전근 등으로 복잡한 시기라 교사들이 인수인계 같은 행정 업무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학기 중에 수업하느라 밀린 서류 작업을 하느라 학생들에게 영화 감상이나 독서 등 자율학습을 시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학부모 사이에서 “공부도 안 시키면서 왜 학교에 나오라고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교육부는 봄방학 직전뿐 아니라 중간·기말 직후 등 관행적으로 수업이 부실한 시기를 아예 방학으로 정해 교육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육부가 내놓은 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존 여름·겨울방학을 유지하면서 월별로 휴업일을 1~2일 두는 형태다. 학부모들은 “지금도 ‘학교장 재량 휴업’으로 매월 쉬는데 그것과 뭐가 다르냐”는 부정적인 반응이다. 둘째, 중간고사 직후인 5월과 10월에 5~10일간 단기방학을 신설하고 여름·겨울방학은 줄이는 방안이다. 단기방학 일정은 학교장이 학부모 운영위원과 협의해 정한다. 각기 다른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면 단기방학 기간이 각각 다를 수 있다. 워킹맘 박정은(45·서울 강남구)씨는 “첫째가 중1이고 둘째가 초4인데 두 아이가 1년에 4번이나 각기 다른 시기에 방학을 하면 온 집안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휴가철도 아닌 봄·가을에 애들 방학이라고 내가 휴가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짧은 기간에 학원을 더 보낼 수도 없어 곤란하다”는 얘기다. 사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수업 공백기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중간에 단기방학을 하더라도 2월 봄방학 직전 일주일은 여전히 등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기 중에 양육만 더 어려워지는 셈이다. 교육부 창의교육학습과 김연석 장학관은 “교육부의 예시안은 참고용일 뿐”이라며 “일선 학교에서 실정에 맞게 최적화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셋째, 2월 수업을 아예 하지 않는 안이다. 2학기 수업을 1월 초까지 마치고 종업식과 동시에 겨울방학에 들어가 봄방학 없이 2월 말까지 쉬는 거다.

수업공백 없애달라니 덜컥 방학 늘리겠다?

수업 공백을 없애자는 취지에는 학교와 학부모, 학생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이 공백을 방학으로 바꾸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방학분산제 실시 적합성 분석 연구’에 따르면 학부모 33.3%가 방학분산제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반면 교사는 54.7%가 찬성했다.

중1 아들을 둔 조윤희(43·서울 성수동)씨는 “방학분산제는 학기 중 쉬는 날을 늘리겠다는 얘기”라며 “주5일 수업에다 틈틈이 학교재량휴일까지 이어져 지금도 노는 날이 많은데 왜 학기 중 방학까지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업 공백을 없애겠다는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워킹맘 박씨 역시 “언제 쉴지를 논의할 게 아니라 수업 공백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느냐”며 “학교에서 시기별로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지 방학을 만들어 가정에 떠맡기는 건 말이 안된다”고 했다.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 최미숙 대표는 “수업 공백기는 학교 프로그램 부재 탓”이라며 “평소 수업 진도 때문에 못한 창의성 교육이나 진로·인성 프로그램을 하면 될 텐데 방학을 대안으로 내놓은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올 겨울방학부터 방학분산제를 도입한 경기도교육청은 보평초와 광덕고 등 지난 5년간 이 제도를 해온 혁신학교를 성공 사례로 제시한다. 하지만 경기도 한 학교의 수석교사는 “혁신학교에서 성공했다고 일반학교까지 무작위로 도입하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난 혁신학교의 경우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교육철학이 남다른 강남 등에서 유입된 학부모가 대다수”라며 “전문직 가장과 전업주부 어머니가 자녀를 적극적으로 돌보기 때문에 단기방학을 이용한 진로·체험학습이 가능하겠지만 다른 지역 맞벌이 가정 아이들은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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