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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깊이보기 :미국서 논란 뜨거운 '지적설계론'

진화론 쪽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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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지 않았다고 기술돼 있는 역사교과서가 있다 치자. 그 저자들이 지금 교육부를 방문해 연일 시위를 하고, 또 일부 인사는 그 교과서의 채택을 목표로 고위층 로비에 열을 올린다. "한쪽 입장만 가르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양쪽 입장을 모두 가르쳐라." 이 얼마나 근사해 보이는 논리인가!

엉뚱하게도 과학 영역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적설계를 믿는 창조론자들이 "생명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각 주의 교육위원회를 압박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언급은 보수 기독교 인사들의 로비에 편승한 것이다.

그 둘 간에 '논쟁'이란 게 실제로 있는가. 사실 이 공정해 보이는 듯한 태도 뒤에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외면과 왜곡이 숨어 있다. 지적설계론자들은 그 이전의 창조론자들(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한)과 유사하게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 마치 진짜 논쟁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들의 전략은 대개 공개적으로 진화론을 오해하거나 오용해 놓고는 생물학자들이 마지못해 몇 마디 대꾸하면 "그 봐라. 여기에 논쟁이 있지 않으냐"는 식이다. 진화론 내부의 진짜 논쟁들을 부풀려 마치 진화론이 좌초 직전에 있는 양 떠벌리고는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만 덧붙인다. "그러니 지적설계론이 옳을 수밖에." 그러나 이는 과학적 진실과 다른 주장이다.

지적설계 운동에는 과학이 없다. 논문 심사 시스템도 없다. 혹시 학회와 학술지가 있다면 그것은 늘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그러니 연구 프로그램과 성과물이 있을 리 없다.

반면 교과서는 있다. 또한 대중 강좌 프로그램은 바쁘게 돌아간다. 왜냐하면 과학의 내용과 논리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이 그들의 고객이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이 자랑하는 지적설계 운동의 3인방, 존슨(법학자).베히(생화학자).뎀스키(과학철학자)의 경우에도 이런 행태는 사실상 반복되고 있다. 베히는 '다윈의 블랙박스'라는 대중서에서 '박테리아의 편모도 이렇게 복잡한데 어떻게 생명이 자연선택으로 진화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개념을 끌고 온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은 세포 수준의 복잡성과 그것의 진화에 대해 그동안 많은 연구를 해 왔으며 그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들을 계속 발전시켜 왔다.

물론 진화론자들의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적설계 가설의 손을 자동으로 들어줄 수는 없다.

과학은 어떤 설명이 '더 그럴 듯한가'의 개연성 싸움이지 '전부냐 전무냐'라는 확실성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확률론 전문가인 뎀스키는 바로 이 취약점을 공략하면서 지적설계 운동을 한 단계 격상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의 현란한 확률 테크닉 뒤에는 끼워 맞추기식 과학 방법론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확률론 전공자들은 우연성.복잡성.특정성을 구분하는 그의 '설명 필터' 이론을 작위적이라고 비판한다.

'과학 혁명의 구조'를 쓴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옳다면 과학 혁명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기존 패러다임에 수많은 변칙 사례가 나타나 위기가 도래해도, 그것들을 해결해 주는 대안적 패러다임이 등장하지 않으면 결코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 진화론에는 아직 위기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몇몇 신앙인이 그것의 대안이라며 지적설계 가설을 들고 나온다. 혁명 운운하면서 말이다. 지적설계 운동은 진화론 흠집 내기라고 생각된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실패하는 법이다.

장대익: KAIST 대우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