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떠도는 자의 우편번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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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의 근대화는 상투를 자르고 유교논리에서 벗어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서양학자들은 오늘날 동 아시아의 경제성장이나 산업사회에서의 성공요인이「유교정신」에 있다고 말하는 점입니다. 닉스(NICS)의 대표적인 나라로 불리는 한국·대만· 홍콩·싱가포르의 네 나라의 문화적 공통점온 유교에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을 포함해서 유교전통이 있는 나라는 서양과는 대조적인 가족윤리를 갖고 있읍니다.
서구의 문명병 가운데의 하나가 가정부재의 현상입니다.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 여성들은 가정에서 직장으로 그 역할이 변하기 시작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혼한 여성의 경우엔 집안의 남편 보다는 직장의 다른 남성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게 됩니다. 서양 직장에서는 점심시간이 되면 남녀가 짝을 지어 식사를 하고 잡담을 즐깁니다.
주로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의 동료들끼리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유교나라들의 직장생활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파티고 직장이고 으례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남녀 짝을 짓는 것이 서양인들의 풍속입니다. 그래서 직장에서의 연애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부인노동자가 늘어갈수록 이혼율은 높아지게 되고 이혼율이 높아지면 따라서 재혼율도 높아집니다.
이렇게 결혼생활이 복잡해지면 자연히 독신생활자가 또 늘어 갈수밖에 없습니다. 이혼 재혼 독신 이러한 낱말들은 가정생활의 불안이나 부재를 나타내는 지수이기도 한 것입니다.
동아시아에는 유교기반이 있기 때문에 근대화를 해도 『챔프』나 『크레머대크레머』와 같은 영화이야기는 드뭅니다. 따라서 가정이 흔들리지 앉기 때문에 직장에서도 열심히 일에 골몰할 수가 있읍니다.
도시화 할수록, 산업화 할수록 인간 개개인은 외로와 집니다. 이른바 인간소외의 현상이지요. 세상은 사막처럼 되어갑니다. 콘크리트의 그 거대한 사막의 도시에서 낙타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녹지가 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가정입니다.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사회전체, 국가전체의 생산성이 저하되는 것입니다. 서양사회가 일하려는 욕망을 잃고 문명병을 앓고 있는 것은 「가정부재」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유교윤리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윤리는 서양처럼 개인에 토대를 둔 개인윤리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관계」의 윤리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기본은 가족에 있고 가족관계가 넓어지면서 인간전체의 관계가 생겨납니다. 수신제가가 치국평천하의 길이 되는 윤리입니다.
동아시아인들의 생산의욕의 뿌리는 가족에 있다는 것이지요. 남편은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아내는 또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를 위해서 외로움과 어려움을 참아냅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종교로 되어 있는 것이「유교」입니다. 가정은 성당입니다.
가정은 십자가입니다. 가족의 피는 성전의 말이며 그 신은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김소월의 시를 읽어보십시오.
「어버이님네들이 외우는 말이/딸과 아들을 기르기는/훗길을 보자는 심성이노라.」/그러하다. 분명히 그네들도/두 어버이들에서 생겻서라./그러나 그 무엇이냐, 우리 사람! 손 드러 가르치는/먼 훗날에/그네들이 또다시 자라 커서/한결같치 외 오는 말이/「훗길을 두고 가자는 칠성으로/아들딸을 늙도록 기르노라.」
김소월은 「니체」가 아닙니다. 서구문화권의 근대시인들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할 수 있지만 유교문화권의 시인인 김소월은 훗길을 보자는데 대탄 허무한 회의가 있어도 「피의 죽음」을 선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훗길을 보자고 살아가는 생명의 목적은 맹목적인 본능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벌레들에게도 있는 욕망입니다. 유교는 이 「훗길」의 본성을 윤리화한 것이기 때문에, 종교화한 것이기 때문에 무신론의 시대가 와도 그 「종교성」은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신없는 종교인 유교가 정신을 지배해온 나라들은 문질빈빈이라는 말도 알고 있읍니다. 문은 인공적인 것이고 질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성과 자연성을 잘 조화시키는 것이 인자입니다. 「문질빈빈」의 인자야말로 공자의 시대가아니라, 지금 바로 이 문명 속에서, 문명과 자연, 인간과 그 환경이 균형을 잃은 이 산업사회에서 가장필요로 하는 사항이지요.
중용은 균형감각 입니다. 현대인은 지금 외줄의 끈 위에 올라있는 곡예사와도 같습니다. 한발 잘못 디디면 몰락과 파멸의 심연으로 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나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는 문명인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평형감각인 것입니다.
유교문화권의 동아시아인들은 그 평형감각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근대문명의 텐션 속에서도 비교적 잘 견딘다는 것입니다.
80년대는 동양의 전통이 근대화를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기 산업사회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밑 걸음이라는 것이 증명 될 수 있는 연대입니다. 말하자면 동아시아의 시대가 열리는 연대입니다. 동양인을 WOG(서구화한 동양신사)라고 비웃던 그들이 이제 조금씩 경이의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신이 써야할 또 하나의「1984년」, 그 미래소설은 우리가 거두지 않고 내버렸던 전통문화의 「이삭줍기」 이야기가 되어야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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