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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아트 마케팅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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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도쿄의 아오야마 지역은 유명 패션 스토어와 트렌디한 레스토랑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고즈넉하면서도 유행의 첨단을 보여주는 이 동네에 다이아몬드를 깎아 놓은 듯한 형태의 눈에 띄는 새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바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프라다 매장으로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설계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메롱의 작품이다.

세계적 패션 브랜드와 세계적 건축 디자인의 만남-이 최상의 크로스오버는 이제 하나의 현상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개관한 리움 미술관의 설계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인 렘 쿨하스가 디자인한 프라다의 뉴욕 소호 매장, 빌바오 구겐하임을 설계한 해체주의 건축의 거장 프랑크 게리의 이세이 미야케 뉴욕 첼시 매장, 퐁피두 미술관 설계로 유명한 렌조 피아노의 에르메스 도쿄 긴자 매장 등 세계적 유명 건축가들의 패션 매장 공간 디자인의 사례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패션 브랜드들의 매장은 전 세계에 수없이 자리 잡고 있지만 전략적으로 선택된 중요한 지점에 유명 건축가의 명성을 덧입힘으로써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가치를 극대화하고,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가장 감각적이고 패셔너블한 대중이 찾는 공간을 디자인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첨단적 공간미학을 최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아트 마케팅의 성공적인 시너지효과를 추구한다.

이 패션 기업들은 미술재단을 설립, 미술품을 수집하고 작가를 발굴하여 수상하는 등 미술 지원 사업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때로는 미술가에게 제품의 컨셉트와 디자인을 의뢰하여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는데,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가 루이뷔통과 일본의 세계적인 네오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의 만남이다. 무라카미는 일본의 대중만화적 캐릭터를 그대로 자신의 회화와 조각에 응용하여 시대를 대변하는 팝아티스트로서 명성을 얻은 작가다. 그는 보수적이고 무거운 느낌의 기존 루이뷔통의 모노그램(로고의 패턴)을 흰 바탕에 가볍고 다양한 색상의 이미지로 탈바꿈시켜 소비자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그러나 패션 기업들만 아트 마케팅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생활용품 제조 기업인 유니레버는 유럽 최대 규모의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손잡고 초대형 설치미술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거대한 터바인 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 전시 프로젝트에는 지금까지 브루스 나우만, 루이스 부르주아, 올라푸르 엘리아슨 등 유명 작가들의 설치작품이 개인전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의 공간적 조건과 유니레버의 막강한 자금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내의 경우 삼성그룹이 미술을 비롯한 문화 각 분야에 막대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규모는 매우 다르지만 대표적인 아트 마케팅의 충실한 성공사례 중 하나로 패션 브랜드 쌈지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쌈지는 몇 년 전부터 지면 광고에 미술가들의 작품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싣고 젊은 작가를 위한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미술계의 현장과 깊숙이 맞닿은 마케팅을 통해 많은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브랜드의 인지도와 가치를 더욱 높여가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의 아트 마케팅은 시대의 문화적 욕구와 수요가 점점 높아져 감과 함께 보다 활성화돼 갈 것이 확실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적극적인 아트 마케팅이 시도되고 있는 곳이 많지 않지만 정신적 여유와 감각의 차별성이 중시되는 시대의 환경 속에서 조만간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아트 마케팅이야말로 감성의 시대에 기업-미술가-고객 간의 삼각관계가 윈-윈-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수단일 것이기 때문이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