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진보, 종북 청산하고 새롭게 진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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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에 불복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진보단체들은 지난 주말 서울 청계광장에서 헌재 결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이는 등 장외 투쟁에 나섰다. 오병윤·김미희 전 의원 등 전직 통진당 의원들은 어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속 의원 5명의 의원직을 박탈한 헌재 결정은 무효”라며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내년 4월의 보궐선거에도 다시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한편 새로운 정당 창당까지 시사했다. 헌재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모양새다.

 헌재가 사상 처음으로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결정적 이유는 통진당의 종북(從北) 위험이 추상적이지 않고 실재하는 위험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관 9명 중 8명이 ‘해산’ 의견을 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국민 대다수도 대체로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조사연구팀이 지난 18~1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 통진당 해산 결정에 찬성한다(63.8%)는 의견이 반대(23.7%)를 압도했다.

 헌재 결정은 그 자체로 불복할 수 없는, 사법의 최종적 판단이다.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내려진 결정인 만큼 거스를 수도, 거스르려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진보 진영은 퇴행적 불복 투쟁에 나서기보다 오히려 이 기회를 진보가 거듭나는 계기로 삼는 게 현명하다. 일부 세력의 종북 논란으로 진보 진영 전체가 궤도를 이탈하는 것처럼 비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진보 정치가 기성 정치권에 ‘소금’ 역할을 한 부분도 적지 않다. 상가임대차보호법·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생활밀착형 이슈와 보편적 복지정책 등을 앞세워 유권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통진당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정당득표율 13.1%)을 국회에 진출시켜 정치권에 파란을 일으켰던 것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종북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고 경선 부정 등의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외면을 받았고, 결국 강제로 ‘헌법에 의한 퇴출’까지 받는 사태에 이르렀다.

 통진당 해산으로 진보적 가치가 부정되거나 위축된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성이 인정되고 진보와 보수가 상호 경쟁하며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는 게 성숙된 민주사회라 할 수 있다. 때마침 진보 진영 일각에서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새로운 진보 정치는 종북과는 명확히 선을 긋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진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생활밀착형 정책 개발에 앞장서는 한편 인권·공동체 의식·민주적 질서를 존중하는 진보적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한반도 밖으로 눈을 돌려 시대적·지구적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도 새로운 진보 정치에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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