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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8)송대후장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3기생중에 또하나의 물건이라면 동란때 전쟁을 잘 했고 그래서 동기생중에서 가장 빨리 장군이 됐을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송대후장군(56·준장·7사단장역임)을 들수있다.
송장군은 원래 평양태생인대 중학교는 일본서 나왔다. 그가 28세때 준장에 진급된것도 화제지만 57년에 현역장군으로서 당시 경무대앞에서 권총을 발사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도 유명하다.
항간에는 송씨가 장군진급을 빨리해 너무 기분이 좋아서 술을 먹고 경무대로 갔다가 경무대경찰서 경관들과 말다툼 끝에 총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나는 내막이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고있다.
본인은 지금도 그때의 사건에 대해 좀더 시간이 지나면 공개하겠다는 애기를 종종하고 있다.
당시 경무대경찰서의 김국진서장과 곽영주경호실장이 모든 권력을 쥐고 군의 인사문제까지 간섭할 즈음이었다.
송씨는 이승만대통령의 인정을 받고있던 청년장군으로서 그들과 보이지 않는 알력관계에 있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본인은 좀더 시간이 지나면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하고 있다.
국가의 틀이 비교적 정착되어 진급이나 보직에 서열이 중시되고 시간이 걸리던 당시에 송씨가 29세에 사단장을 할수 있었던 것은 유명한 용문산전투에서 국군전사에 빛나는 전투를 했기 때문이다.
51년11월25일 중공군의 총공세가 있은 이후 유엔군은 계속 밀려 내려 서울까지 다시 내주었다.
당시6사단(사단장 장도영준장)도 평북 초산까지 진출했다가 후퇴, 동두천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충북 충주로 후퇴했다가 51년2월 반격에 들어갔다.
5l년 5월5일 6사단2연대(연대장 송대후대령)는 사단 전초부대로서 용문산을 중심으로 포진을 했다.
용문산은 경기도양평군에 위치한 해발1천1백57m 고지로 서울중심의 모든 국도를 장악할수 있고 한강유역과 경인지방까지 제압할수 있는 전략상의 최요충지여서 적의 주력이 이곳에 모였다.
적은 중공군 제63군187사단·188사단·189사단 및 제60군 179사단·l80사단등 약5만8천명이 집결돼 있었다.
5월19일 적의 주력이 침공을 개시하자 송대령의 제2연대 좌우에 배치됐던 미38연대와 국군36연대가 철수해 버려 2연대는 완전 고립, 사방이 포위된 속에 사단의 지원이 있기를 기다렸다.
연대는 완전포위를 당해 사단과 통신도 두절되고 포지원도 없이 적 수개사단의 집중공격을 버티어 내야 했다. 연대장 송대령은 3개대대를 독립전투단위로 운영, 4각방어를 하게 했다.
적은 피리를 불고 꽹과리를 치면서 수차례 파상공격을 했었다. 그때 2연대는 탄환과 식량까지 떨어져 노홱한 중공군의 무기와 식량으로 버티어 나갔다.
만3일동안 2연대 공략에 실패한 적은 우리 사단 주력부대가 반격을 개시하자 퇴주하기 시작했다.
포위된 2연대는 수차례의 백병전등으로 적의 시체가 쌓여 시체 치우는데 불도저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용문산전투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6사단은 5일만에 38선 이북까지 적을 내몰았다. 이때 전과는 사살2만1천4백28명, 생포2천5백43명, 야포등 20문, 말4백필, 차량 30대등이고 적이 버리고 간 식량만도 군단병력이 1개월간 먹을만한 분량이었다.
2연대가 버티어낸 전술을 사주방어라하여 지금도 육군에서는 당시의 전투내용을 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다.
특히 당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6사단2연대는 용문산부대라 명명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고 이 부대에서는 거의 매년 송장군을 초대해 당시의 전투를 회고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전투중에 이승만대통령이 송대령에게 친필로 나라의 흥망이 귀하의 어깨에 달려있으니 선전분투하라는 격려문을 써 쇠통에 넣어 L-19비행기로 전장에 떨어뜨리기까지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송씨는 58년 준장예편이후 개인사업등을 하고있다.
이밖에 3기생 중에서는 당시 1사단15연대2대대장을 받았던 김진위소령이 북진때 1착으로 평양에 입성해 김일성내각본부를 점거하는 기록도 남겼다.
후일담으로 김장군한테 들은 얘기지만 김일성책상에 초인종이 22개나 달려있었고 냉장고에는 각종과일·고기가 가득히 든채 그대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1사단 대대장을 했던 정영홍씨(59·준장·전종합화학이사), 김영하씨(62·준장), 5·16때 혁명재판소장을 지낸 최영규(64·소장예편), 윤태호(59·중장)장군등이 잘 싸웠다는 평을 듣고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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