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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왕 최측근 슝샹후이는 속 시뻘건 공산당 ‘빨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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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호 29면

1947년 3월 국민당 중앙군을 이끌고 공산당 근거지 옌안을 점령한 후쭝난(가운데). [사진 김명호]

깨지지 않는 동업은 없다. 정당 간의 연합도 일종의 동업이다. 결국은 치고 받고 하게 마련이다. 국·공 양당은 북벌과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두 차례 합작했다. 합작 동안 중공은 결별에 대비했다. 국민당 수뇌부에 우수한 첩자를 침투시켰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405>

1949년 10월, 전 서북왕 후쭝난(胡宗南·호종남)의 정보참모 슝샹후이(熊向暉·웅향휘)는 미국에서 중공 정권수립 선포 소식을 접했다. 유학생활을 걷어치우고 귀국길에 올랐다. 홍콩에 도착하자 홍콩싼롄(香港三聯)의 구석방에 짐을 풀고 소식 오기를 기다렸다. 신문도 거의 보지 않았다. 12년간 직속상관이었던 후쭝난과 2년 전 결혼 보증인을 흔쾌히 수락했던 장징궈(蔣經國·장경국)에 관한 기사만 보면 만감이 교차했다.

중공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가 보낸 편지는 간단했다. “베이징으로 와라. 오찬을 함께하자.” 11월 6일 정오, 국민당 고위 간부 몇 명이 저우언라이의 전신 초청을 받았다. 환담을 나누던 참석자들은 슝샹후이가 나타나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반가워했다. “야! 슝샹후이도 기의(起義)했구나.” 당시 공산당에 투항하거나 대륙을 떠나지 않은 전 정권의 고위층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기의’라고 부를 때였다.

싱글거리며 보고만 있던 저우언라이가 폭소를 터뜨리더니 입을 열었다. “슝샹후이는 기의가 아니다. 원대 복귀다. 내가 후쭝난에게 잠시 파견했을 뿐, 원래 우리 당원이다. 외교는 정보전이다. 장차 훌륭한 외교관이 될 테니 두고 봐라.” 저우언라이는 외교부장도 겸하고 있었다.

후쭝난 부대의 옌안 점령 1개월 전에 결혼식을 올린 슝샹후이.

슝샹후이는 저우언라이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키신저와 닉슨의 중국 방문을 막후에서 지휘하고 유엔 대표도 오래 역임했다. 4인방 처리에 골몰하던 예젠잉에게 묘수를 제공한 사람도 슝샹후이였다.

저우언라이의 말이 끝나자 다들 경악했다. 국민당 군 참모차장이었던 류페이(劉斐·유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쭝난은 황푸군관학교가 배출한 명장이었다. 전쟁에서 질 때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며 혀를 찼다.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비서실장과 요직을 두루 역임한 장츠중(張治中·장치중)도 무릎을 쳤다. “정보전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의 적수가 못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후쭝난이 옌안을 점령했을 때 마오쩌둥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중공은 우리의 군사행동을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었다”며 슝샹후이에게 미소를 보냈다.

슝샹후이의 침투 과정은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도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중일전쟁 초기인 1937년 가을, 상하이에서 일본군과 대치하던 후쭝난은 ‘호남청년전지복무단(湖南靑年戰地服務團)’이 보낸 전보를 받았다. “애국 지식청년들이 장군이 지휘하는 천하 제1군에 자원을 희망합니다.” 후쭝난은 으쓱했다. “환영한다”는 답전을 보냈다. “청년들을 우한(武漢)까지 인솔하라. 측근에 지식청년을 한 명 두고 싶었다. 내가 직접 선발하겠다”며 사람까지 파견했다.

우한에서 중공연락사무소를 총괄하던 저우언라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후쭝난의 신변에 비밀 공작원을 파견하기로 결심했다. 청년공작 담당자에게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후쭝난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의심이 많다. 우선 써보고 버리는 성격이 아니다. 한 번 쓴 사람은 절대 내치지 않는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방법이 없다. 이런 사람을 충족시키려면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담당자가 난감해하자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우선 명문 출신이라야 한다. 학력도 중요하다. 일류대학 졸업생일수록 좋다. 젊고 사상이 개방적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마르크스와 레닌, 쑨원의 저작을 많이 읽고 폭넓은 지식에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대담하면서 꼼꼼하고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을 물색해라. 가끔 쌍소리를 해도 속되지 않으면 금상첨화다.” 청년공작 담당자는 동기생 슝샹후이를 추천했다. “아버지는 후베이(湖北) 고등법원장, 칭화대 재학 시절 입당한 비밀당원입니다.” 저우언라이는 만족했다.

저우언라이의 지시를 받은 슝샹후이는 ‘호남청년전지복무단’에 참가했다. 단원 면접에 나선 후쭝난은 슝샹후이가 마음에 들었다. 부관으로 써보니 나무랄 데가 없었다. 황푸군관학교에 입학을 권했다. 군관학교를 마치자 정보참모로 기용했다.

장제스가 후쭝난에게 보낸 작전 명령서는 슝샹후이의 손을 거쳤다. 후쭝난이 장제스에게 보내는 보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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