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몰카족·소아성애 … 사건기자, 소설에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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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말할 수 없는 안녕
정강현 지음
푸른봄, 208쪽
1만2800원

애틋한 청춘소설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딴판인 소설집이다. 현직 신문사 사건기자인 저자가 취재 현장에서 맞닥뜨린 사건·사고 체험을 바탕으로 써낸 일곱 편의 단편을 담아서다.

‘몰카족’을 그린 ‘범죄가 제일 쉬웠어요’, 소아성애 살인사건이 소재인 ‘너의 조각들’, 핏줄이 의심되는 아들을 한강다리 아래로 던진 비정한 사내가 나오는 표제작…. 소설 속 이야기들은 한국 사회의 초상화를 암울하고 축축하게 그린다. 한국 사회에 대한 소설적 보고서라고 할까.

저자의 상상력은 소설의 우울함을 덜어내는 역할을 한다. ‘셀프타이머’에서는 사진 찍힌 사람이 반드시 죽고 마는 악마의 사진술이 등장한다. 사실주의 소설 원리를 뛰어 넘는 설정이다. ‘말할 수 없는 안녕’에서는 자살대교 마포 다리가 화자다.

 ‘범죄가 제일 쉬웠어요’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아침에 목격한 가뿐한 청춘의 장면을 떠올리고 있자니 이런저런 문학상 수상작을 편집해 놓은 소설책이 한없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여성 화장실에 몰래카메라 설치를 마친 주인공의 푸념이다. 소설의 재미를 위한 과장된 표현일 테지만 책상머리에서 쓰인 기성 소설에 대한 은근한 견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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