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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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80년을 한 사람과 같이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것도 80년을 한결같이 변치 않고 사랑한다는 건? 내년이면 결혼 20년차인 나로서는 짐작조차 힘든 경지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 중인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76년을 함께해 온 노부부의 사랑 얘기다. 커플 한복을 입은 노부부는 어린 연인들처럼 장난을 친다. 끝내 이별이 찾아오는 순간, 객석은 눈물바다가 된다. 상업 대작 영화들 사이에서의 분투, 중·장년층뿐 아니라 젊은 관객들의 호응, 다큐의 영역 확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영화다.

 혹자는 ‘불멸의 사랑이라는 노인판 로맨스 판타지’라고 일축하지만, 사실 그렇게 단순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그저 사랑의 위대함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자세에 대해 말한다. 89세 할머니는 영화 내내 “예쁘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꾀꼬리가 예쁘고, 들꽃이 예쁘고, 그 꽃을 귀에 꽂은 98세 할아버지가 예쁘단다. 다음은 “불쌍하다”다. 주워 기른 강아지가 불쌍해 어쩔 줄 모른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할아버지 불쌍해서 어쩌누”라며 울먹인다. 통상 할 법한 “날 두고 가다니 난 어떻게 살라고” 같은 흔한 말은 없다.

 사랑의 본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태도에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사랑할 만한 상대를 찾지 못해서 혹은 상대에게 문제가 있어서 사랑을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사랑하려는 마음, 혹은 사랑을 사랑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랑하는 마음이란 세상 모든 약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 혹은 배려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진모영 감독은 “76년간 습관처럼 상대를 배려했던 부부”라며 “서로의 행동이 서로의 사랑을 불러들였다”고 했다. 영화 속 할아버지는 “평생 식사하면서 맛없다는 얘기를 한 적 없다. 그저 맛있으면 많이 먹고, 맛없으면 조금 먹으면 된다”고 했다. 이런 밥상머리의 배려가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자격, 사랑의 DNA다.

 한편 진 감독은 이 영화가 흥행하면서 한 예술영화 전용관 체인에서 스크린 수를 늘려가자 스스로 스크린 축소를 요청해 눈길을 끌었다. “문득 보니 우리 영화가 다양성영화관의 다양성을 해치는 꼴이더라”고 했다. 평소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를 비판해 온 독립영화인의 결단이다. 그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해야 한다. 사람이든 영화든 진짜 사랑한다면 말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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