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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문가 긴급진단 "쿠바를 보라는게 대북 메시지"

중앙일보

입력

미국이 반세기 만에 쿠바와의 적대 관계 청산에 나서며 북ㆍ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쿠바 관계 정상화를 통치 유산(legacy)으로 남기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향후 대북 정책의 방향과 북한의 대응 여하에 따라선 북ㆍ미 관계가 변곡점을 맞을 수도 있다. 본지는 17일(현지시간) 미국의 대북 전문가 8인을 통해 미·쿠바 국교 정상화가 북한에 주는 함의와 향후 북ㆍ미 관계을 긴급 진단했다.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선언에 대해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는 일정 단계를 밟을 경우 뭐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가 북한에 주는 신호는 분명하며, 미얀마를 보고 이제 쿠바를 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 사회에서 고립됐던 미얀마는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찾으며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성공했고 국제 사회의 지원도 얻어냈다.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날 성명에서 “경제ㆍ금융 제재는 우리 나라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던 만큼 중단돼야 한다”며 경제 재건이 국교 정상화의 배경임을 시사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도 “미국에겐 영원한 적은 없다는 게 국교 정상화가 북한에 주는 미국의 핵심 메시지”라며 “북한이 미국과 국제 사회의 우려와 관련해 이에 부응하는 단계를 밟는다면 평양은 워싱턴이 쿠바에 하는 것처럼 북한에도 우호적으로 나올 것임을 확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스탠퍼드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은 “미국에 쿠바에 취하는 정책은 오바마 정부가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는 이란과의 경우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란 핵 문제를 놓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쿠바식 해법이 북한에도 적용되려면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미국과 쿠바의 전격적인 관계 정상화는 오바마 대통령이 냉전 때 만들어진 국제 질서를 현실에 맞게 전면적으로 바꿀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면서도 “평양이 비핵화 약속 이행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북ㆍ미 관계에서 극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는 지금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초빙연구원은 “(시장 개방과 경제 재건에 나선)쿠바와는 달리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가속화할 조짐을 보이는 만큼 쿠바와 북한의 처지는 천양지차”라고 말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쿠바의 인권 상황에도 문제가 있지만 유엔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 인권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했다.

사회주의 형제국 쿠바가 북한에 줄 영향을 놓고도 전문가들은 진단과 제언을 내놨다. 더글라스 팔 카네기평화연구원 부회장은 “쿠바는 오래 전에 미국을 위협하는 대열에서 빠졌다”며 “쿠바가 나서서 북한에 긍정적인 교훈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이제 미국은 쿠바와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위치에 있게 됐다”며 “쿠바가 장기적으로 북한 지지 대열에서 벗어날지 주목된다”고 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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