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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나라>라는 말이 있고 또<국가>라는 말도 있다. 인생 반넘어 살아오는 동안 이 말을 새삼 사전에서 찾아 그 뜻을 확인하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몇년전 우연한 계기로 나는 독일극작가 「뒤렌마트」가 쓴 회곡 한 편을 읽은 적이 있다. 로마의 어느 왕조의 몰락을 소재로한 그 작품속에서 주인공이 내뱉은 한 마디 대사가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수천년에 걸쳐 줄곧 국민이 국가를 위해 희생되어 왔지만 이제 국가가 국민을 위해 희생되어야할 차례』라고하는 서릿발같은 대사였다.
국민을 의해 국가가 희생할 차례라니! 세상에 이런 말도 있을수 있는가 싶었다. 해방후의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나의 생각으로는 국민이 국가를 의해 희생할 수는 있을지언정 국가가 국민을 위해 희생한다는 말은 상식밖의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한마디 말은 기묘하게 나를 자극해 왔다.
국가란 무엇인가? 나는 우선 급한대로 우리말사전에 의지해서라도 평소에 막연히 알고 있던 국가의 개념을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국가>가 <나라>와 같이 사용되는 말임을 분명히 한 다음, 정치적으로는 『일정한 영토에 거주하는 다수인으로 구성된 정치단체. 영토·국민·통치권이 그 개념의 3요소를 이룸』이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이 사전의 말풀이는 나를 더욱더 혼란에 빠지게 했다. 도대체 국가가 영토와 국민과 통치권의 3요소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어떻게 <국가를 위해 국민이 희생하라>든가 <국민을 위해 국가가 회생하라>는 말이 가능한 것인가? 사전에 풀이된 국가의 개념이 틀림없는것이라면, 지난날의 우리 현실에서 이말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오용되어 왔는가를 알수있다.
그것은 차라리 영토와 국민을 떠나 별도로 존재하는 신성불가침의 어떤 권력과 같은 의미로 생각되기에 알맞게 사용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권력의 먼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국가>라는 위세좋은 한자어의 위압감에 묘한 반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것은 정치가의 언어이지, 우리같은 서민으로서는 입에 올리지도 못할 말이라고 생각되기도한다.
시인들의 글에는 <국가>라는 말은 없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시인들이 비애국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국가>라는 말 대신 <나라>라는 말을 더 즐겨 쏜다.

<국가>라는 한자어가 위압감을 주는데 반해 <나라>라는 우리말이 정서적으로 호소력이 강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녈 터다. 알게 모르게 <국가>라는말은 오랜 세월동안 정권적인 차원에서만 이해되도록 오염되어 왔다.
그에 반해 <나라>는 정권을 초월해 존재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진정한 애국이란 국가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나라에 대한 사랑일것이다. 우리말사전에서 <국가>와 <나라>가 완전히 같은 말이라고 아무리 강조한다 한들, 현실적으로 이 두 단어가 사용되는 범위와 그 느낌이 크게 다르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수 없다. <국가>의 이미지가 <나라>와 일치하는 그런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것일 것이다. 정희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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