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기업 경영자는 직원 모멸감 주는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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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이병남 원장

30여년 간 조직과 사람을 연구해온 이병남(60) LG인화원장(사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LG그룹서 보낸 20년의 소회를 터놓으려는 게 아니다. 갈등과 냉소의 장(場)이 돼버린 시장·기업·자본주의의 대안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최근 출간한 책 『경영은 사람이다』(김영사)는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 문화를 넘나들며 그가 찾아낸 시장·기업·인간에 대한 통찰이 녹아있다. “인간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궁극의 답”이라는 ‘사람 경영론’이 그 핵심이다. 미국에서 10여년 간 노사관계를 연구하고 가르친 이 원장은 지난 95년 LG그룹에 영입돼 2000년대 초·중반 (주)LG의 인사팀장(부사장)으로서 LG의 차세대 최고경영자(CEO)그룹을 육성했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지난 16일 경기도 이천시 인화원에서 그를 만났다. 논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최악의 경영자는 조직구성원이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이 원장은 “90년대말 외환위기 때 사업매각과 인력감축을 끌고 가면서 반발하는 직원들을 보며 ‘인간존중 경영’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 말고도, 사람들이 살아있는 눈빛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지난 20년간 찾아왔다”고 운을 뗐다.

 답을 찾았을까. 그는 “시장을 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기업과 인간을 달리 볼 수 있다”고 했다. 시장에 모든 걸 맡기면 된다는 자유방임주의나 시장은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벗어나자는 얘기다.

 그는 “시장은 자기조절능력과 다양성을 필요로하는 생태계”라며 “최근 글로벌하게 퍼지고 있는 공유경제도 시장이라는 생태계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안들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 기업들은 어떨까. 이 원장은 “기업이 시장이라는 생태계 안에 있는 생명체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추구나 주주 이익 극대화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윤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목표는 될 수 있지만 기업의 존재 이유나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며 “이윤만 쫓다 보면 이윤은 오히려 도망간다”고 말했다.

 원래 사업의 본질에 충실해야 이윤이 따른다는 ‘이윤의 역설’이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창업후 346년째 역사를 잇고 있는 독일 화학·제약기업 머크와 미국 최대 유기농 슈퍼체인 홀푸드마켓을 꼽았다. 이 원장은 “머크 가문은 ‘의약품은 환자를 위한 것이지 이윤을 위한 상품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부단히 기억하고 강조했다”며 “날마다 회계장부를 들여다보며 시장에서 거칠게 경쟁하는 동시에, 본질적 목적을 잊지않고 성찰하는 기업이 생태계에서 오래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홀푸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매년 10% 이상 매출을 끌어올린 동시에, 미국 정부에 유전자변형농산물(GMO) 표시제 시행을 압박할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결론은 사람으로, 리더로 모아졌다. 시장도 기업도 결국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리더는 조직구성원들이 리더가 되도록 해주는 사람”이라며 “회사 조직원 개개인의 존엄을 무시하면 기업이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에게 아무리 엄격하고 독하게 일을 시켜도 그 일이 상사의 개인적인 출세가 아니라, 조직 공동의 성과로 이어지고 조직원 모두가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란 믿음이 있다면 조직원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 원장은 “‘기업가정신’ 역시 일부 창업자에게나 필요한 자질이 아니다”고 말한다. 대기업 직원들을 그저 ‘선량한 관리자’로 머물게 해선 안된다는 통찰이다. 그는 “일부 조직에는 리스크테이킹(위험감수)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틈새를 열어줘야 조직이 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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