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공진초' 의 비극, 내 안의 조현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전교생이 120여 명인 ‘미니 학교’가 있다. 공진초등학교 가양 분교다. 서울에 하나뿐인 초등 분교다. 이 학교는 내년 2월에 문을 닫는다.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전학 가야 한다.

 교육청은 그 자리에 정신지체 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를 만들기로 했다. 강서구에 약 200명의 정신지체 학생이 있는데, 딱 하나 있는 이 구의 특수학교(교남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는 인원은 그중 절반에 불과하다. 약 100명의 학생은 멀리 다른 구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장거리 통학은 자녀와 함께 등·하교를 하는 부모들에게도 고통을 준다.

 그런데 이 특수학교 신설에 제동이 걸렸다. 주민들의 ‘민원’ 때문이다. 주민들이 내세운 이유는 도서관·체육관 같은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집값 하락 걱정이 깔려 있다. 반대에 앞장선 곳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 단지다. 40, 50평대 아파트가 많은, 이 일대에서는 가장 잘사는 동네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여러 차례 교육청을 찾아가 집단 항의를 했다.

 17년 전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특수학교인 ‘밀알학교’가 문을 열 때도 반대가 심했다. 통학버스 출입로 봉쇄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특수학교는 혐오시설도 기피시설도 아닌 그냥 ‘학교’다. 단지 보호가 좀 더 필요한 아이들이 다닐 뿐이다.

 공진초 분교가 생겨난 사연은 더 기구하다. 이 학교는 임대아파트 단지 옆에 붙어 있다. 처음 생긴 1992년에만 해도 수백 명의 학생이 다녔지만 최근엔 해마다 신입생이 크게 줄었다. 임대아파트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집이 드물어 단지 전체가 ‘고령화’됐기 때문이다. 결국 공진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마곡지구로 지난 9월에 옮겨갔다. 당시 교육청은 공진초에 다니는 학생들은 길 건너의 탑산초등학교로 전학시킬 계획이었다. 그런데 공진초 학부모들이 반대했다. 이유 중 하나는 “탑산초 아이들과 부모들은 우리 자녀를 ‘임대 애들’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왕따’당하면서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논란 끝에 ‘한 학기 동안 분교로 유지’라는 절충안이 나왔다.

 특수학교를 막아서고, 길 하나 사이로 갈라져 산다. 누구나 약자에 대한 배려를 말하지만 내 문제가 되면 ‘몸의 털 하나 뽑는 것’도 아까워한다. 오만과 편견이 넘실댄다. 그 속에서 많은 ‘조현아’가 자라고 있다.

이상언 중앙SUNDAY 차장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