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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협력의 새 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제적인 세력관계의 개편 움직임을 생각하면 이 지역 안정기반의 하나인 한일 협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데 이견을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련은 지난 2, 3년 동안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여 한국, 미국, 일본 등의 안보상의 이익을 위협하면서 금년 봄부터는 중공과의 화해 모색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중 소 관계가 50년대의 군정 동맹으로 되돌아가리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이데올로기 대립을 잠시 접어 둔 국가간의 관계 개선만으로도 동북아시아 정국에는 큰 변화가 예상되는 것이다.
이런 정세에 가미된 새로운 변화요인으로 소련서 「안드로포프」체제가 등장하고, 일본에는「나까소네」(중증근강홍) 내각 탄생, 중공의 등소평-호요방 실용주의 노선의 정착을 들 수 있겠다.
한국, 미국, 일본 세나라는 우리의 북방에서 발단된 동북아시아의 변화에 현실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상호 협력 관계를 재점검하고 약한 부분을 보완하며 미뤄둔 일들을 서둘러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이다.
특히 한 미 일 3각 협력관계에서 언제나 한일관계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한일 의원연맹이 3년만에 처음으로 동경서 회의를 열고 경협 타결, 무역역조 시정 등에 관한 10개항의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은 그런 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측에서 51명의 대표단이 가서 단 하루밖에 회의를 하지 앉았다는 것을 보면 거기서 실질적인 토의를 기대하기 어렵고, 더구나 일본 정부의 대한정책에 구체적으로 반영될 만한 합의가 성립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한일의원 연맹회의는 그것이 마침내 열릴 수 있었다는 데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는 정도로 만족해야할 것 같다.
내년 초에는 정부간의 무역회의가 열릴 예정이고, 뒤이어 역사 왜곡 파동으로 중단되어있는 경협 회담이 재개 될 것으로 보인다.
「나까소네」수상은 일본의 군사력 증강, 소련 세 견제, 미국과의 마찰 해소에 「스즈끼」전 수상보다 더욱 열의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동북아시아 정세세가 요구하는 한일협력 관계의 정상화가 궤도에 오를 조건은 충분히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원연맹의 결의가 일본정부의 대한 성의로 나타난 예가 드물다. 수상의 말이 실무자들의 협상 테이블에서 반영된 경우도 한일간 최대 현안인 경제협력 문제에서는 거의 없었던 실정이다.
의원 연맹 회의는 한일협력 관계의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
일본에서 새 내각이 들어서고 역사왜곡의 홍역을 치르고 소련의 위협이 증대되고 중공이 미일과 함께 취하는 소련 견제의 공동 보조에서 한발 물러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본은 종래와 같은 근친적, 이기적 자세를 버리고 지역 안보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대국적인 자세로 새해의 한일 협상에 임할 것을 기대한다.
한국의 성장과 안정이 일본의 안정을 위해서도 자위대 전력의 증가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본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 싶다.
「나까소네」수상의 한국에 관한 발언이나 의원연맹 회의에 참석한 일본측 의원들의 규모 등으로 보아서 일본은 한일관계 개선에 모처럼의 적극적인 성의를 보인다는 인상을 받는다. 문제는 그런 성의, 그런 제스처가 미사여구에 그치지 않고 실속과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가 일본에 바라는 것은 형식적인 성의가 아니라 실천적인 성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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