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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이 마비된 20대 국가유공자 인정 판결

중앙일보

입력

2011년 6월 입대한 김모(25)씨는 강원도 홍천의 A부대에 배치됐다. 당시 A부대는 선임 병사들이 후임 병사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많았다. 잠을 재우지 않거나 사소한 잘못에도 얼차려 등 단체 기합이 이어졌다.

고된 군생활이었지만 김씨는 동기인 B이병과 서로 의지하며 견뎌냈다. 그러던 중 2011년 10월 B이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B이병의 시신은 함께 야간근무를 섰던 김씨가 발견했다.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김씨에게도 고난이 닥쳤다. 군 헌병대는 '사고 경위를 조사한다'며 3~4일에 걸쳐 김씨를 불러 조사했다. 이후 김씨의 진술로 선임들의 각종 가혹 행위가 밝혀지면서 해당 포대는 해체됐다. 김씨도 다른 포대로 재배치됐다.

하지만 그는 곧 관심병사로 분류되면서 감시를 받게 됐다. 화장실에 갈 때도 다른 사람이 따라붙었다. 다른 병사들의 텃세도 이어졌다. 종교활동 등이 있는 날에는 김씨의 진술로 징계 등을 받은 선임병들과 마주쳤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김씨는 몸에도 이상을 느꼈다. 호흡이 가빠지거나 심장이 뛰며 허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2011년 12월께는 숨이 가빠 구보를 뛰지 못했고 전신 마비 증상까지 보였다. 그는 군 병원에서 '갑상선방증 또는 급성 발작을 동반한 그레이브스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민간 병원에서도 '주기성 마비, 갑상샘기능항진증'을 처방받으면서 2012년 2월 말 의병 전역했다.

이후 김씨의 가족은 "김씨가 징병신체검사에서 1등급 판정을 받는 등 입대 전에는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며 인천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등록신청을 했다. 그러나 인천보훈지청은 "김씨의 병이 군 복부와는 상관없다"며 거부했다.

이와 관련, 인천지법 행정 1단독 이의영 판사는 14일 김씨가 인천보훈지청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취소 소송에서 원소 승소 판결했다. 이 판사는 "그레이브스병의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지만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요인 중 하나고 원고의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 외에 다른 요인을 찾기 어렵다"며 "김씨가 군 복무 중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해 병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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