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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장기 독주 체제 굳히나…대안 부재로 롱런 가능성

중앙일보

입력

큰 이변이 없는 한 14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의 압승이 확실시된다. 단독으로 의석 3분의 2까지 노려볼 수 있게 됐다.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하면 역대 최다 의석 도전까지 가능해 보인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정치학박사)은 "자민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여당 압승의 결과가 예상된다"며 "이는 자민당을 대신할 대안 정당이 마땅치 않고 야당이 지리멸렬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는 양적완화와 소비세 증세,재정 지출 확대 등을 통해 아베노믹스를 성공시킨 것처럼 보였지만 생각보다는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고용 신장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소비세 부담 증가로 가계 소비심리는 위축됐다. 그 결과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치자금 회계 부정 등으로 지난 10월 각료 2명이 사임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하지만 문제는 민주당 등 야당도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안부재론이다.

대안부재론으로 아베 압승 예상

여론조사 결과대로 여당이 압승하면 아베 총리는 24일 소집될 예정인 특별국회에서 제97대 총리에 선출된다. 2006년 9월~2007년 9월 1기, 2012년 12월~2014년 12월 2기에 이어 세 번째 총리직이 된다. 돌발 악재가 없는 한 아베 총리는 내년 9월 치러질 자민당 총재(임기 3년) 선거에서도 손쉽게 승리할 것이다. '아베 독주 체제'를 굳히고 2018년까지의 4년 임기를 넘어 롱런의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2001~2006년 제87~89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이후 근래 들어 최장기 일본 총리로 기록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지난 임기 때와 대내외 정책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예상 외의 압승을 거두게 되면 아베 정권의 우경화 노선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가장 큰 관심사는 자민당 단독으로, 혹은 공명당과 합해서 3분의 2 의석(317석)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이는 개헌 발의나 여당 단독 입법을 가능하게 하는 의석이다. 현재로선 달성이 유력해 보인다.

지난해 참의원(전체 242석) 선거에서 자민당은 114석, 공명당은 20석을 얻어 과반은 확보했지만 3분의 2에는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에 자민·공명당이 중의원 3분의2 의석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개헌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야당의 다른 파트너나 의원들의 가담 없이는 어렵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이 단독으로 중의원 3분의 2 의석을 얻으면 개헌을 위한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개헌에 소극적인 연정파트너 공명당의 협조 없이도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개헌에 전향적인 야당 의원이 다수 당선하면 더욱 그럴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헌을 내세워 정계개편을 주도할 수 있게 된다.

한일 수교 50주년 이후 한·일 관계 주목

자민당은 2012년 중의원 선거 공약에서 군대 보유와 개헌의 발의요건 완화 등을 내건 바 있다. 지난 8월에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법제 측면에서 개헌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했다. 이번 선거전에서 아베 총리는 개헌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선은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싶다"며 분위기 조성에 힘쓸 뜻을 밝혔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의 핵심 조항인 9조의 '전수(專守)방위(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 원칙 개정을 필생의 과업이자 '정치를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해왔다. 민주당과 '생활의 당'은 선거공약에서 개헌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은 "미래지향의 헌법을 구상"한다는 추상적인 표현을 하는데 그쳤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박사)는 "이번 총선 후 자민당이 전면 개헌이 아닌 원포인트 개헌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일부 야당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개헌에 동조하고 있다"며 "군 병력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내용을 바꿔 자위군이나 국방군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개헌안이 추진될 수 있다"고 봤다. 진 일본연구센터장은 "개헌절차를 완화하는 개헌안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각의 의결을 통해 밀어붙인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은 더욱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의원 3분의 2를 차지하면 자위대법 안보관련법률들의 개정이나 제정 등 법제화 작업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민주당 등은 해석변경 각의 결정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공산·사민당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 앞두고 장기집권 전망도

아베는 개헌과 함께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진 연구센터장은 "아베 총리로서는 둘 다 지지와 반발을 동시에 안게 돼 어차피 딜레마 상황"이라며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규제완화와 경제자유화를 밀어붙일 수 있다"고 봤다. 아베 총리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인프라 개선 등 토건사업을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경기부양을 꾀할 수 있다. 아직은 좀 이른 전망일 수도 있지만 아베 총리가 건강상 큰 문제가 없다면 롱런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보수층의 지지를 의식한 우경화 움직임은 강해지겠지만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역사문제 퇴행은 덜 할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교수는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는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 센터장은 "하지만 독도나 교과서 문제 등 한국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일,중·일,북·일 관계에도 다소의 변화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아베 정권의 장기집권 체제가 뿌리를 내리게 되면 입지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중국을 의식하면서 미·일 동맹 강화를 꾀하고 있다. 내년에 개정할 예정인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선 중국의 위협을 명시하면서 미일의 공동 대응을 강조하려 한다.

남북한과 중국이 아베 정권의 장기화 국면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관계 개선에 나설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중·일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는 서서히 풀려가고 있다. 정부 각료 차원 등의 대화도 다시 가동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제의한 바 있다. 이번 일본 총선을 계기로 새로운 실마리를 찾는 모색이 나올 수도 있다. 내년이 한·일 협정 체결 50주년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양국 관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을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만나서 해결해 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다.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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