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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할의 신빙성, 근본없는(?) 문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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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부문 차장

“6할이라고 본다. (첩보가 맞을 가능성이) 6~7할쯤 되면 상부 보고 대상이 된다. 이걸 박관천 경정이 작문을 했다? 왜? 그가 거짓말을 해서 이득을 볼게 아무것도 없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이달 초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윤회 국정개입 동향 문건의 신빙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서다.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6할밖에 되지 않는 문건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4할이나 되는데도 진위 여부에 대한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을 자인한 것이기도 하다. 박 경정을 철저히 믿었고 박 경정이 “모임 참석자로부터 직접 전해 들었다”고 해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문건에는 경천동지할 만한 쇼킹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정씨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비롯한 10명의 청와대 비서관·행정관(‘십상시’로 표현)과 매월 두 차례씩 비밀회합을 갖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합에서 정씨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교체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새누리당 최고위원)에 대해 ‘근본 없는 놈’이라고 폄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덕중 당시 국세청장이 장악력이 부족하다는 발언도 했다고 돼 있다.

이 정도라면 조 전 비서관이든, 박 경정이든 최초 제보자를 만나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최소한 회동장소로 지목된 음식점에 가서 탐문 조사를 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확인절차는 없었던 것 같다. 이는 문건 작성 및 보고에 관여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성향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와대 공식 내부 문건이 작성 당사자에 의해 외부로 빼돌려지고 마치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처럼 시중에 유통되다가 일부 대기업으로까지 흘러갔다는 점이다. 문서 관리 측면에서 심각한 구조적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사건이 살아 있는 권력의 ‘그림자 실세’로 알려진 정씨와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간 권력 암투 과정의 소산이라는 지적에도 반박할 여지가 적다. 지난 10일 검찰에 첫 출두한 정씨가 담당 검사에게 “박지만 회장과 대질시켜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면서 사건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까지 제기된 정씨의 박 회장 미행설, 비밀회동설 등을 두고 검찰을 심판으로 해서 1대 1로 누구 말이 맞는지 가려 보자는 사실상 최후 통첩인 셈이라서다. 정씨는 “엄청난 불장난을 한 사람과 그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문건 내용 대부분이 풍문과 사실을 교묘히 뒤섞어 포장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결론은 곧 나올 것이다. 문제는 반복되는 불신이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와도 승복하지 않고 또 다른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근본 없는(?) 문건 때문에 연말 대한민국이 어지럽다.

조강수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