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혼돈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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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논설주간

영화 ‘인터스텔라’를 관람했다. 블랙홀·화이트홀·웜홀…. 현대물리학의 화려한 군무(群舞)를 제대로 이해할 순 없지만 온몸을 휘감는 원초적 슬픔은 느꼈다. 우주여행 중 만난 강력한 중력 때문에 시간이 천천히 흘러 반대로 시간이 빨리 가는 지구의 어린 딸을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공포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시간과 공간에 갇힌 인간의 유한성과 사랑의 절대 가치를 일깨우는 은유(隱喩)가 가득한 종교적 서사(敍事)였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영화가 관객 900만 명 돌파의 대박을 친 데는 우주 과학 교육을 시키겠다는 부모들의 교육열이 한몫했다는 점이다. 내 아이만큼은 입시경쟁의 블랙홀에서 살아남게 하자는 부모들의 처절한 욕망이 투사된 한국적 영화 소비 방식이었다.

 2014년 한국을 지배하는 가치의 코드는 단연 경쟁이다. 무조건 성공하고 봐야 한다는 경쟁심이 다른 모든 가치를 무릎 꿇렸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의 비교연구에 따르면 선진국인 네덜란드의 압도적인 가치는 관용이고 다음이 경쟁이다. 독일과 미국에선 경쟁이 첫 번째지만 두 나라 모두 평등·연대·관용의 삼총사가 보완해주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경쟁의 중요성이 절대적이다. 문제는 그 다음의 가치도 경쟁의 다른 이름인 성공이라는 점이다. 타인에 대한 관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응답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62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지구의 어디에서도 이런 승자독식의 강박증은 찾아볼 수 없다.

 극단적인 경쟁과 탐욕의 결과는 너무도 우울하다.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6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너나 구분 없이 불행하다. 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의 공공성 수준은 최하위인 33위다. 공공성의 핵심 요소는 공익성, 공정성, 공개성, 민주적 시민성이다. 장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근원에는 우리 사회의 공공성 부족이 있다고 진단했다. “경쟁을 하더라도 침몰하는 순간이 오면 같이 해결하겠다”는 공동체적 윤리가 우리에겐 없다. 그게 있으면 경쟁도 정의로운 가치가 된다. 세월호 참사를 개인이 감당해야 할 비극으로 묻어버리지 말고 사회적 기억의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을 뒤흔든 ‘비선 실세’ 파문도 실은 극도로 낮은 공공성이라는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선’이 국가 권력을 농단해 왔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각자도생의 탐욕이 최소한의 분별을 요구하는 공공성을 희롱한 것이기 때문이다. 음습한 권력이 짙게 선팅된 불투명 유리 안쪽에서 누군가를 향해 총구를 겨눌 때까지 공익과 공정, 공개, 민주적 시민성은 도대체 어디서 잠자고 있었던 것일까.

 이번 소동에 등장하는 ‘비선’과 ‘문고리’들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지 않은 권력을 행사했다는 공통적인 혐의가 있다. 헌법 1조 2항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적혀 있다. 만약 ‘문고리 3인방’의 월권이 사실이라면 헌법은 국민을 속이는 허위의 문서가 된다.

 한국에선 통치의 대상인 백성에서 국가 권력의 원천인 시민으로의 진화가 미완성 상태일지도 모른다.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이루고 공공정신과 도덕을 내면화한 시민으로 직립(直立)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구미(歐美)는 우리가 깊이 잠들어 있던 18세기의 황혼이 채 저물기도 전에 시민혁명의 통과의례를 치렀다. 그래서 스스로 시민의 면허증을 따고 권력의 주체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물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조항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왔으면 좋겠다’고 고쳐 써야 맞다고 야유한다.

 인류가 향유하고 있는 어떤 제도도 공짜가 아니다. “Libert<00E9>, Libert<00E9> ch<00E9>rie, Combats avec tes d<00E9>fenseurs!”(자유여, 소중한 자유여, 너의 수호자들과 함께 싸워다오!) 프랑스인이 사랑하는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한 대목이다. 자유의 여신에게 자유를 애걸하지 않고 ‘우리’도 동참하겠다는 의지가 흘러넘친다. 대혁명의 여정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겐 아직도 민주적 시민성, 시민적 참여가 남의 옷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희망과 탄식이 교차하는 역사의 바다를 쉬지 않고 항해해야 우리도 시민의 라이선스를 가질 수 있다. 잠시라도 항해를 중단하는 순간 마주하게 될 세계는 섬뜩한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이라고 했다. 난제가 쌓인 국정운영에 대한 무한책임을 토로한 것이다. 대통령이 혼돈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역사의 바다를 함께 항해하기 바란다.

이하경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