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가 돌아왔다 "자선축구는 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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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홍명보(45·사진)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다시 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자선축구경기를 재기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하지만, 고민 끝에 용기를 냈다. 지난 7월 대표팀 감독 사퇴 기자회견 이후 152일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처음엔 내 이름을 걸고 시작했지만, 이제 자선축구경기는 한국 축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벤트로 성장했다. 내 문제 때문에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홍명보장학재단이 주최하고 하나은행이 후원하는 ‘셰어 더 드림 풋볼매치(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이하 홍명보자선경기) 2014’가 오는 13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다. 지난 2003년 시작해 올해로 12회째다. 지난해까지 총 13만명의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고, 모금액 19억원은 불우이웃과 난치병 환자들에게 전달됐다.

 자선경기 개최를 알리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홍 감독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로 예선 탈락한 이후 홍 감독은 축구계 안팎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영웅이 불과 2년 만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비난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이름이 걸린 이벤트 개최를 주저한 이유다.

 극복의 힘은 책임감에서 나왔다. 8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자선경기 미디어데이에서 홍 감독은 “내가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기 이전부터 자선경기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면서 “이제는 ‘홍명보의 이벤트’가 아니다. 한국 축구가 국민에게 받은 사랑을 환원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용기도 얻는 무대로 자리잡았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낮아진 홍 감독은 더 낮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스타 위주로 자선경기를 치르던 전통을 깨고 장애인 축구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청각 및 시각장애·뇌성마비·지적장애 등 각 분야 국가대표 네 명을 초청해 사랑팀과 희망팀에 포진시켰다. 홍 감독은 “장애인 축구대표팀이 지난 8월에 경비를 마련하지 못해 브라질에서 열린 장애인 월드컵 참가를 포기했다는 뉴스를 뒤늦게 접했다”면서 “그분들과 우리가 이번 행사를 통해 기쁨과 감동을 나눌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홍 감독의 뜻에 동감한 축구계 안팎의 인사들이 출전을 자원했다. 안정환(38) MBC 해설위원이 사랑팀, 김병지(44) 전남 드래곤즈 골키퍼가 희망팀 감독을 맡았고, 남녀 선수들과 연예인들이 출전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홍 감독은 한국 축구에 대한 걱정도 조심스레 꺼냈다. “최근 프로축구연맹과 구단의 갈등, 승강 플레이오프 이후 논란 등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그는 “이번 일을 한국 축구와 그 구성원들이 건강한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나 자신부터 반성하겠다”고 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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