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창령 조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경남 창령군 설암면 옥천리 화왕산 정상에 용지라는 큰 연못이 있다. 『신라 진평왕대의 한림학사 이광왕의 딸 예향은 우연히 병을 얻었다. 그는 이 연못에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리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치병하던 중 용자 왕결과 만나 잉태, 집에 돌아가 아들을 낳았다.
그 아기의 겨드랑이에는 「용조」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광왕이 진평왕에게 고하니 이를 신기하게 여겨 아기에게 조성을 내리고 유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유용은 자람에 따라 매우 총명하였으므로 진평왕이 사랑하여 여러 가지 관직을 내리고 드디어 부마를 삼으니 곧 선덕여왕의 부군인 음갈문왕이요 창령 조씨의 시조이다.

<왕묘에 함께 묻혀>
창령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조씨 득성과 시조 태사공에 관한 실화다.
태사공은 그 후 왜구가 침입했을 때 보국 대장군이 되어 이들을 물리쳤고 삼국통일의 주인공 김춘추·김유신 등을 배후에서 지도한 인물이었다고 『창령 조씨 시조기』는 전한다.
인구 70만의 창령 조씨는 신라·고려조에 이르기까지 현관·거신들이 많았고 조선에 들어서는 절개 높은 선비를 적지 않게 배출했다.
한 왕조가 무너졌을 때도 쉽게 변절하지 않고 전의 왕조와 운명을 같이 하거나 악정에 직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많다는 것이 조씨들이 내세우는 가문의 자랑.
신라 말기 아간 조흠은 신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며 벼슬을 버리고 경주 토함산에 들어가 명월을 벗삼아 여생을 보낸 고신.
려말의 무장 조민수는 이성계 일파의 야심에 반기를 들었다가 창령으로 귀양가서 죽은 지조 있는 장군이었다. 창령 조씨가 내세우는 인물의 한 사람으로는 고려 때 좌정승을 지낸 양평공 조익청을 빼놓올 수 없다. 그는 충숙왕 때부터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3대의 왕을 모시면서 나라의 기둥으로 사직을 보필한 공으로 창령 조씨에서는 유일하게 왕묘(공민왕)에 함께 묻히는 영광을 누렸다. 민수 장군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조선에서는 야인으로 많이 돌았다고 하지만 조석문은 세조 때 영상까지 지낸 명신이었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부수찬을 지내고 세조 때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청렴한 대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후손 유은·유상 형제는 중종반정 공신이고 문수·한영의 일문에서는 30명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성종기의 대문장가로 알려진 조위는 사림의 거물인 매계 김종직의 처남으로 두시언해를 번역하고 성리학에도 깊이 통달한 대표적 학자.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게 대학자 남명 조식이야말로 창령 조씨가 내세우는 가장 우뚝 솟은 인물이다.
『벼슬을 탐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며 사림들에게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선비정신을 가르쳤던 남명선생의 사상이야말로 우리 문중을 대표하는 정신』이라고 직계후손인 조경정씨(55)는 강조한다.
남명사후 5년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그의 제자였던 홍의 장군 곽재우 등 57명이 의병을 일으켰던 것도 남명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한다.
남명은 명종이 여러 차례 벼슬길에 오를 것을 권했으나 치국의 도리와 학문의 방법을 표로 올리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60세때 산청군 시천면 원리의 두류산 기슭에 있는 속칭 덕산마을로 은거, 후학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이처럼 『조문의 사람들은 재물을 크게 모은 부자는 없어도 「꿋꿋한 절개」로 버티었고 비정에 직언을 서슴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전 대종회장 조동환씨(62)는 말한다.
고당 조만식은 근세의 거목.
한일합방이 되던 무렵의 20대 청년인 고당은 안도산의 국내 투쟁이론에 큰 감화를 받아 민족지도 이념노선을 결정했다.
고당은 일제시대에도 국내에 머물면서 ▲민족산업증진 ▲생활조건 개선 ▲배일 독립정신 함양 등을 지표로 한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고당은 북한이 공산화된 뒤에도 동포를 버리고 월남할 수 없다며 끝까지 북한에 남았다.
현대 인물로는 진보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조봉암씨, 민주당정권 때 내무·법무장관을 지낸 조재천씨가 정계의 별들.

<죽산도 창령 조씨>
조일환·조창대·조영규씨 등 전직 국회의원 13명에 조형부·조덕현·조기상씨 등이 현직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 외무부장관 조정환씨도 창령 조씨. 교육자로는 전 교대학장 조재호씨, 조무성 광운공대 이사장이 있고 학계에는 동경대 출신의 사학자 조주호박사(성대교수)가 우뚝하다. 의학계에는 조규상씨(가톨릭의대 학장), 조준승씨(경북의대 교수·대종회장)등이 돋보인다.
전 MBC 사장이었던 조증출씨는 방송계에서 꼽히는 인사였고 전 대한체육회장이며 현재 88서울올림픽위 사무총장 조상호씨도 조문이 배출한 인물.
이 밖에 조병구 문수암 주지와 조성파 통도사 주지는 종교계의 인맥이고 법조계에는 조우현 서울고검 부장검사와 조재석 경주지청장이 있다.
조훈현 9단은 국내 바둑계의 거성, 음악평론가이며 성악가인 조재현씨도 특이한 존재.
야당국회의원이었던 조영규씨와 현 국회의원 기상씨는 부자지간이며 조선일보 사회부차장 조연흥씨는 고당의 3남, 그리고 적십자병원 치과과장 최막준 박사가 고당의 사위.
창령 조씨 대종회는 문중의 단결력이 비교적 강해 경북 월성군에 있는 시조묘를 비롯해 남명의 사당 등 손질이 잘 돼있고 올해는 ▲장학사업 ▲창령성지 확장사업 등을 벌일 계획이다.

<지명인사>
▲조병주(의박) ▲조중환(의박) ▲조식현(의박) ▲조경종(부산검역소장) ▲조대환(의박) ▲조규갑(법박) ▲조향(의박) ▲조병춘(명지대 교수) ▲조종택(동아대 교수) ▲조원호(서울대 교수) ▲조규갑(부산공대 교수) ▲조규대(부산수산대 교수) ▲조규증(경북의대 교수) ▲조두흠(한국일보 편집국장)▲조광현(백병원의사) ▲조장환(농촌진흥청·농박) ▲조두환(의박) ▲조재호(의박) ▲조오철(동의공전 대학장) ▲조민식(교장) ▲조재철(교장) ▲조규갑 ▲조규창 ▲조만종 ▲조규완 ▲조병진(이상 전 국회의원) ▲조용현(대양산업 사장) ▲조동환(전 국제상사 사장) ▲조석윤(건설회사 사장) ▲조강호(삼호물산 사장) ▲조효식(고려화약사장) ▲조태호(태림산업 사장) ▲조이호(동일운수 사장) ▲조옥환(부산교통 사장) ▲조규상(금호운수 사장) ▲조두홍(진해상공회의소 회장) ▲조재오(광원여객 사장) ▲조상철(종합병원 이사장) ▲조영금(현대주택사장) ▲조창환(이화산업 사장) ▲조규철(고려은단 사장) ▲조호련(대한상호신용금고 사장) ▲조영환(천광의원장)▲조영주(전 재일 거류 민단장) ▲조흥채 ▲조규대 ▲조규광 ▲조창기 ▲조진환 ▲조기항(이상 변호사) ▲조경식(차관보) ▲조규연(감사원 국장) ▲조규향 (청와대 비서관) ▲조규창 (총리실 비서관) ▲조기효 ▲조해령(이상 군수) ▲조정현(준장) ▲조문환(예비역 중장) ▲조천성 ▲조여만 ▲조혁환(이상 예비역 소장) ▲조광호 ▲조욱련 ▲조태호(이상 예비역 준장) ▲조유노(시인) ▲조운순(시인) ▲조기정(도예가) ▲조일상(조각가) ▲조철환(태백 경찰서장) ▲조정순 ▲조일근 ▲조성규 ▲조영식 (전 경찰서장) ▲조규진(농민신문 편집이사) <대종회제공·무순>
글·김광섭 기자 사진·김재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