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걱정 접고 체험학습·퓨전수업 … 교실에 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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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수서중 1학년 학생들이 미술 시간에 각자 그린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들고 영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지난 3일 오전 11시 서울 수서중 1학년 교실. 김이향 영어교사가 그림을 나눠줬다. 지난 주 미술시간에 학생들이 직접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중 원하는 걸 골라 그린 것이다. 수업 주제는 ‘My friend Vincent(나의 친구 빈센트)’. 김수연(13)양이 영어로 자신이 그린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 그림을 소개했다. 이어 김 교사가 구불구불한 별빛을 가리키며 특징이 뭔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strong color(강렬한 색채)”“heavy touch(무거운 질감)”“active scene(역동적 화면)” 등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김양은 “교과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린 그림을 사용하니 수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엄지용(13)군은 “미술은 좋아하지만 영어를 싫어했는데 이런 식으로 배우니 영어 압박감이 덜하다”며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를 하는 편이었는데 이번 학기엔 시험이 없는데도 수업에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어와 미술이 결합한 ‘퓨전 수업’은 해당 교사들이 학기 전부터 연관있는 교과 내용을 찾아내 준비한 결과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1학년 대상 자유학기제를 시행 중이다. 이번 학기 자유학기제가 진행 중인 1학년 학생은 학기 내내 지필고사를 치르지 않는다. 김 교사는 “예전엔 월별로 가르칠 교과서 단원이 정해지고 중간·기말고사에 맞춰 진도 빼느라 바빴는데 자유학기제를 하면서 수업을 창의적으로 짤 수 있게 됐다”며 “정기시험을 보진 않지만 오히려 학기 내내 수시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교사가 수업의 주도권을 쥐고 간다”고 설명했다.

 교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 중인 자유학기제 참여 학교 가운데 교과 위주 교육에서 탈피하는 곳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학교는 꿈과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교과간 벽을 허문 융합교육을 진행한다. 효과는 학생들의 변화로 나타났다. 성화숙 수서중 교감은 “수업에 토론, 체험, 게임을 적용하자 학업에 관심 없던 학생들까지도 흥미가 높아지더라”고 말했다.

 수서중은 자유학기제를 계기로 교사들이 연계 수업안을 짰다. 미술시간에 ‘나의 집 만들기’ 작품을 만든 뒤 도덕시간에 이를 놓고 현대 사회에서 집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는 식이다. 김수정 미술교사는 “연계 수업을 했더니 ‘성적에 안 들어가는데 왜 배워야 하냐’는 질문이 사라졌다. 물론 교사들이 과거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진짜 수업하는 맛이 난다”고 전했다.

 지난해 2학기부터 자유학기제를 도입한 경기도 안산시 신길중은 교과 밖으로까지 융합교육을 확장했다. 1학년 전교생이 매주 두 차례 3시간씩 참여하는 22개 선택프로그램이 그런 과정이다. 뮤지컬·꽃꽂이·요리 등의 활동을 하면서 봉사나 나눔 같은 덕목도 깨우치도록 과정을 짰다. 지난 4일 비즈쿨반 학생 20여 명은 사회복지관을 찾아 어르신들과 함께 비누를 만들고, 글을 모르는 분들을 대신해 편지도 써 줬다. 화훼반 학생들은 지난달 꽃다발을 만든 뒤 뮤지컬 공연 중인 친구들을 찾아가 전달했다. 허은숙 교육과정부장은 “학교와 교사가 높은 교육철학을 세우면 학생의 인성과 사회성도 길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부모 윤기득(37·여)씨는 “사춘기 아들이 꽃꽂이를 만들어 엄마에게 주고 학교에서 있던 일을 얘기한다”며 “자유학기제에 시험을 안 보니 학업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다양한 협업을 통해 지식을 익히면서 남과 어울리는 법도 배우는 아들을 보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자유학기제 도입 학교들을 보면 여건과 소재지에 따라 프로그램의 질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며 “제도 취지에 맞는 충실한 교육과정 개발과 함께 학력 저하, 사교육 심화 등에 대한 우려를 극복할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김기환·신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자유학기제=중학생이 한 학기 동안 진로탐색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꿈과 끼를 찾도록 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교육과정.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자유학기엔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고 강의식 대신 실습·토론 등 학생 참여 중심으로 수업이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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