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밤 잠 못 이루는 당신, 멜라토닌 부족 의심해 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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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이 길어질수록 불면증 환자는 괴롭다. 잠이 안 와 뒤척이기 일쑤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 나이도 불면증과 관련이 있다. 불면증 환자 10명 중 7명이 50대 이상이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수면을 촉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줄기 때문이다.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두흠(전 대한수면의학회 이사장) 교수는 “멜라토닌 호르몬을 보충하는 치료제와 생활습관 교정으로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습관성·부작용 염려 없는 멜라토닌 치료

뇌에서 만들어지는 멜라토닌은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이다. 밤이 되면 혈액을 통해 온몸으로 분비되면서 ‘자야 할 시간’이라는 신호를 준다. 이 신호에 맞춰 혈압·혈당이 서서히 떨어진다. 멜라토닌은 밤새 일정한 속도로 분비되면서 숙면을 취하도록 돕는다. 낮에는 멜라토닌 수치가 0까지 떨어진다.

 이런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가 줄고 불안정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노화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체내에서 멜라토닌을 생성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다가 55세가 넘어가면 멜라토닌 분비가 급격히 감소한다. 둘째, 생활습관이다. 낮에 충분히 햇빛을 쬐지 않거나 운동을 하지 않으면 멜라토닌 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지 못한다.

 멜라토닌이 부족해 생기는 불면증은 멜라토닌 성분의 수면제로 치료할 수 있다.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을 받은 ‘서카딘’(전문의약품)이 대표적이다. 체내 멜라토닌 호르몬을 보충해 불면증을 치료하는 원리다. 8~10시간에 걸쳐 서서히 방출되면서 수면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한다. 기존의 ‘향정신성 수면제’와 달리 부작용이 거의 없다.

 향정신성 수면제는 체내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쳐 중추신경계에 변화를 줌으로써 우울·불안·불면증 같은 증상을 치료한다. 박두흠 교수는 “향정신성 수면제를 3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 약을 끊었을 때 불면증이 더 심해지고 불안해지는 금단현상이 온다”고 말했다. 특히 노인은 향정신성 수면제를 복용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에 취약하다. 박 교수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숙취 현상 때문에 넘어지거나 인지 기능에 영향을 준다”며 “수면 단계 중 ‘깊은 수면’의 시간을 짧아지게 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멜라토닌 성분의 치료제는 이 같은 향정신성 수면제의 부작용 우려를 덜 수 있다. 인체 내 호르몬을 그대로 약으로 옮겨놓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습관성을 유발하지 않고 인지 능력에도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 박 교수는 “소화기 장애나 어지럼증이 약간 있을 수는 있지만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라며 “불면증 환자에게 처방할 때 기존의 수면제를 대체하거나 병행해 적절히 사용한다”고 말했다.

불면증 방치하면 심혈관계 질환 악화

나이가 들어 잠자는 시간이 짧아지고 숙면을 취하는 것이 어려우면 멜라토닌 분비 감소가 주요 원인일 수 있다. 3개월 이상 잠을 제대로 못 자 일상에 불편을 겪는다면 불면증의 징후다. 박 교수는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낮에 피로·졸음 때문에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며 “장기간 지속하면 면역력이 약해진다”고 말했다.

 특히 불면증을 방치하면 노인에게는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하는 단초가 된다. 박 교수는 “잠을 잘 때는 자율·교감신경이 저하되면서 심장을 보호한다”며 “불면증 때문에 혈압·심박이 떨어지지 않으면 자칫 만성심혈관계 질환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불면증 자체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악화할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불면증 치료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수면제를 복용하면 무조건 약에 내성이 생기고, 치매 같은 부작용이 올까봐 걱정한다. 김정일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수면제가 무조건 습관성을 일으키지는 않으므로 생활습관 교정과 함께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연관 질환으로 악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고 낮에는 충분히 햇빛을 쬐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 또 자기 전 카페인이 든 식품을 먹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 원장은 “멜라토닌 성분의 수면치료제는 멜라토닌을 서서히 보충시키는 원리이므로 한 달 이상 꾸준히 복용하면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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