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투기지대 <1> 4,500만원의 프리미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직은 개포·과천 등 일부지역에서 특히 심하지만 77, 78년과 비슷한 부동산투기열풍이 다시 불고있다. 대응이 늦거나 잘못되면 또 한번 투기광란사태로 확산될지 모르는 아주 안 좋은 조짐이다.
부동산투기가 어느 정도이며 어디까지 번질 것인가. 투기는 누가 부채질하고 있으며 관계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투기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투기지대의 전모를 집중 점검해 본다.
【편집자주】
아파트 한 채에 웃돈이 4천 5백만원-. 8천 8백만원짜리 집에 절반이 넘는 공짜 돈이 붙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처럼 신나는 일이 없다. 뭣 하러 갖은 고생하며 회사를 다니고,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중동엔 꽤 가나. 머리 한번 잘 들리면 편히 앉아 떼돈을 버는데….
그러나 착실하고 부지런한 것이 제일인줄 알고 사는 사람에게는 또한 이처럼 허무한 것이 없다. 지금까지 성실히 살아온 자신이 바보스러워 진다.
그 동안 그 고생을 하며 닦아온 「한자리 수자 물가」의 안정기조가 뿌리째 흔들리는 사태다. 은행마다 붙었던 『인플레 시대는 지났습니다』라는 구호가 무색할 지경이다.
한달에 50만원짜리 월급장이가 30만원을 생활비로 쓰고 20만원씩 저금을 한다해도 4천 5백만원을 모으려면 자그마치 18년이 걸린다. 청춘을 다 보내야 하는 기간이다.
한달 7O만원씩 받는 일류회사 고참부장이 15년 근무하고 받는 퇴직금이래야 2천만원 정도..뿐만 아니다. 정부가 서민들에게 살라고 지어 분양하는 15평 짜리 아파트의 본채 값이 1천만원선. 이런 집 3채를 합쳐도 어떤 아파트 프리미엄만도 못하다.
집 장만하려고 섭씨 40도의 중동에 일하러 나간 근로자가 1년에 6천 달러씩 받아도 10년을 고스란히 모아야 한다.
무언가 돼도 크게 잘못됐다.
이것이 사람의 의욕과 희망을 짓밟아 경제와 사회를 병들게 하는 프리미엄이다.
요즘 서울 개포에서 춤추는 아파트프리미엄을 보면 77, 78년의 부동산 대투기극이 다시 재연되고있는 느낌이다.
아니 그 때보다 한 수 더 떠 프리미엄의 「큰손시대」가 온 것 같다.
4년 전의 프리미엄은 분양되고 나서 2백만∼3백만원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돌려 치기 되면서 1백만∼2백만원씩 올라갔다. 액수도 인기아파트라야 2천만원 미만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개포 프리미엄은 분양발표와 동시에 증권시장처럼 상종가를 때려버린다. 집은 서지도 않았는데 프레미엄이 먼저 치솟는 것이다. 단위도 2천만원, 4천만원으로 4년 전의 백만 단위가 천만 단위로 인플레 됐다.
개포 프리미엄은 지난 10월 중순 분양된 경남아파트부터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경남은 개포 지구에 32, 45, 56평 짜리 4백 8가구를 착공하면서 분양했던 것인데 이때 벌써 복부인과 복덕방이 깊이 개입, 프리미엄 올리기 작전을 폈다. 그래서 나온 값이 프리미엄 1천 6백만원.
그 다음 공략대상이 10월 26일 접수해 11월 2일 발표한 선경으로 역시 발표당일 1천 7백만원이 불었다.
그러나 개포 투기의 백미는 역시 지난 4일 발표한 우성아파트. 인근 복덕방과 복부인들은 이미 지난여름부터 우성 개포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 치밀한 정보망과 자금준비를 해오면서 대투기극 연출 각본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최우선 분양권을 갖는 0순위(6회 낙첨)의 통장 값이 10월 들어서부터 천장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10월 전까지만 해도 2백만원을 넣은 주택청약예금통장이 10월 중순에 1천만원이 됐고 5백만원을 입금한 통장은 2천만원에 거래됐다.
그리고 다시 이 통장으로 분양을 신청한 물 딱지 상태에서 다시 한번 값이 뛰어 4백만∼5백만원의 프리미엄이 프리미엄 위에 붙었다. 그리고 분양자 발표와 함께 최고 4천 5백만원까지 홋가 하는 투기극이 연출된 것이다.
이번 개포 투기의 수법은 지난 77,78년에 널리 유행했던 돌려 치기와 민영통장 매점. 회전수법 이라고도 하는 돌려 치기는 일부 악덕복덕방과 복부인 등 투기꾼의 결탁에 의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복덕방이 평소 잘 아는 스폰서 겸 물주인 복부인에게 통장을 사도록 하고 이를 다시 다른 스폰서에게 높은 값에 전매시키는 수법을 계속하는 것이다. 복부인들끼리 서로 팔고 사고하면서 스스로 값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수법으로 통장 값이나 분양된 아파트의 프리미엄은 눈사람 불어나듯 늘어나는 것이다.
통장매점은 미리 겨냥한 아파트를 분양 받기 위해 장기간 복덕방을 통해 복부인들이 통장을 사들이는 것으로 이 중에 몇 개만 당첨돼도 비싼 프리미엄 덕분에 밑천을 건지고도 남는 것이다. 복덕방 가운데는 자신의 자금능력으로 통장을 사 긁어모아 직접 분양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개포 투기에는 약 1백명 정도의 전문복부인이 개입했으며 이들을 포함한 투기꾼과 복덕방 등이 1천억원 이상을 동원했다는 것이 현지의 정통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보통 4∼5명이 1조가 돼 복덕방을 상대로, 또는 자력으로 투기를 벌인다. 이들의 자금동원능력은 웬만한 기업체보다 훨씬 상수로 한 시간 안에 2억 정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밖에도 한 복덕방마다 최소 1∼2명씩의 스폰서를 잡고있다.
이른바 개포라고 불리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대치동 일대에는 4백여 개의 복덕방이 몰려있는데 이 가운데 10여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인가업소. 이 업소들은 2년 전쯤부터 「개포에서 한탕」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각지에서 몰려들었으나 당국에서 소개업소신고를 받아주지 않자 신고 없이 장사판을 벌였다.
이 무신고업소들은 이 때문에 당국이 신고를 받아줄 것을 바라고있는데 무턱대고 신고를 받지 않는데도 난립의 원인은 있다.
이 곳의 청실아파트 앞에는 N강가라는 3층 빌딩이 있는데 이 건물의 별명은 「복덕방 빌딩」이다. 이 건물의 2층에는 토끼장 같은 복덕방 30여 개소가 성업중이나 1백%가 무 인가라고 한다. 이 지역 복덕방들은 지난 달 말 아파트투기가 한창 일 때 스스로 7일간 문을 닫고 자숙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복덕방들은 앞문은 닫고 뒷문은 연 채 영업을 하거나 이른바 「판돌이」라는 명함 돌리는 직원을 10여명씩 동원, 모델하우스에서 영업을 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인근 서초·잠실·반포·여의도 복덕방 등 줄잡아 1천여 명이 몰려들어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이번 개포 투기에는 아파트를 분양한 건설회사들도 한 몫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분양을 받고도 계약을 하지 않아 비게 된 아파트를 대량 복덕방과 복부인에게 빼돌리고 이를 다시 프리미엄을 얹어 사들임으로써 가수요를 불러일으키고 인기아파트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프리미엄은 비단 이번의 개포 뿐만이 아니다.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 12차의 61평형은 자그마치 6천 5백만원, 57평형은 6천만원이 붙었고 현대 11차에도 4천만∼4천 5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있다.
살려고 지은 집이 아니라 투기하는 집이다. <신종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