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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 통신의 자유는 기본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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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정원(옛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는 특별법 제정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지방 변호사회(서울변회)는 23일 성명서를 통해 "도청 내용 공개는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변회는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를 "우리 사회를 '문명사회에서 야만의 시대'로 후퇴시키고자 하는 반민주적.반법치적 움직임"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11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불법 도청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불법 도청 공대위)'는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도청 테이프의 내용 공개를 골자로 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인권 침해에 대한 경고 필요성 느껴"=서울변회는 성명서에서 "정보화 사회에 접어든 오늘날 통신의 자유는 신체.사상.양심.종교의 자유 등 민주국가가 지향하는 최고 가치의 기본권중의 하나"라고 밝혔다. 또 "통신의 자유가 없는 신체.사상.양심.종교의 자유는 구두선(口頭禪)에 불구하다"고 강조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을 "헌법이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로서 종래 위헌 소지가 있는 악법과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고 규정했다. 특별법을 통해 이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 '반문명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변회 이준범 회장은 "불법 도청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인데도 현역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관련자의 실명을 밝혀 개인들의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에 인권단체로서 경고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민노당 노회찬 의원의 실명 공개로 전.현직 검사는 사실 관계 여부를 확인받을 기회도 없이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변회는 "O양 비디오 사건과 연예인 X파일 사건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현역 국회의원이 면책특권의 미명하에 도청 내용을 공개하고 정당과 시민단체는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채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백수 총무이사는 "서울변회의 의견은 변호사 대다수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며 "정치권이 추진하는 특별법은 명백히 소급 입법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가라면 누구나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변회는 서울지역 변호사들의 모임이자 각종 공익 활동을 하는 단체다.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전체 변호사 7013명 가운데 67%인 4705명이 소속돼 있다. 전국 14개 지역에 있는 지방변호사회 중 최대 단체다.

서울변회 집행부는 회장(1명).부회장(2명).이사(9명)로 구성된다. 지난 1월 새로 구성된 집행부는 보수 성향의 변호사들에게서 지지를 받아 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자 앞에서 굴하지 않겠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23일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주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총장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 '삼성 뇌물 공여사건 등 불법 도청 공대위' 참여 단체 대표들을 면담한 자리에서다. 천 장관은 이들이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자 "특정 기업과 특정인을 거론할 수는 없다"면서도 "강자 앞에서 굴하지 않고 강력히 검찰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장관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공대위 대표들은 이날 천 장관에게 도청 테이프 내용은 특별법을 제정해 공개하고 테이프의 내용 중 불법 행위 혐의가 있는 경우 특별법에 의해 구성되는 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특검 수사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검찰이 이미 공개된 테이프를 중심으로 대기업의 정치자금 제공 의혹과 안기부 불법 도청 부분을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혜수.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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