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남기고, 다시 쓰고 … 정유업계 홀로 흑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7면

정유업계가 최악의 실적을 내고 있지만 업계 막내격인 현대오일뱅크는 반전의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3분기까지 누적기준 1792억원의 영업흑자를 올렸다. 9분기 연속 흑자다. 올해 3분기까지 업계 1~3위인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이 4000억원 안팎의 손실을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선전의 이유를 ‘아끼고, 남기고, 다시쓰고’의 준말인 ‘아남다’로 들었다. 첫 시도는 원유 직접구매. 전문 중개상에 수수료를 내고 사오던 구매 행태를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남미 국영석유회사로부터 원유를 사들여 직접 호주·뉴질랜드 석유회사에 판매하면서 가격 경쟁력도 높였다.

 ‘아끼기’ 위해 대산공단 내 화학회사와 손도 잡았다. 원유 정제엔 수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공단 내 이웃인 LG화학·롯데케미칼 등 3개 화학회사에선 버려지는 수소가 넘쳤다. 4개 회사는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서로 남는 것을 배관을 통해 주고 받기로 했다. 수소를 받는 대신 정제 과정에서 생긴 남는 열을 이웃 회사에 넘겼다.

 ‘남기기’ 위해 대산공장에선 격주로 현장 엔지니어들이 참여하는 수익개선 아이디어 회의를 열고 있다. 엔지니어들은 아스팔트를 처리하고 나온 부산물에 액화석유가스 와 고가의 프로필렌이 들어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프로필렌 회수 장치가 있는 공장으로 관을 연결하자”는 아이디어로 현대오일뱅크는 10월부터 프로필렌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다시 쓰기’엔 자신감마저 생겼다.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외국계 기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가 있는 동안 못했던 고도화 설비 투자가 이어졌다. 2011년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고,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원유를 정제해 나온 중질유를 다시 한 번 처리해 휘발유를 만드는 고도화 비율이 업계 최고인 36.7%로 올라갔다.

 이정현 현대오일뱅크 상무는 “원가 절감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 침체기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성장기에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