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그룹|진짜 주인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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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큰 기업들의 실제주인은 누구일까. 어느 회사의 사장이 누구라는 것은 드러나 있지만 그 사장을 떼고 붙일 수 있는 대주주들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국회에서의 위장분산 시비로 큰 기업의 대주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재무부의 답변처럼 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실제주주가 누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증권감독원이 지난 7월25일까지 신고 받은 l백54개 상장기업의 대주주(친족· 특수 관계인 포함) 지분율 현황을 보면 주식의 「분산 소유」 상황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다.
증권감독원 자료를 토대로 주요 그룹의 대주주 계보를 살펴보자.
현대· 삼성· 대우· 럭키를 비롯한 주요 그룹의 주식분산 상황은 그 그룹의 성격과 비슷한 점이 많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아직도 뱃심좋게 주력인 현대건설을 비롯한 몇몇 기업을 비공개로 밀고 나가고 있고 또 현대그룹만큼 계열기업끼리 서로 주식을 공유하는, 이른바 상호주를 갖고 있는 그룹도 드물다.
삼성의 주식분산은 치밀한 안배가 이루어져 있고 럭키그룹의 주주명부는 차라리 구씨와 허씨의 족보에 가깝다. 보통 2백 명 가까운 일족이 함께 주주명부에 이름을 걸어놓고 있고 또 4대가 함께 이름이 올라 있는 주주명부는 럭키계열 외엔 찾아볼 수 없다.
대우는 김우중 회장이 사재 2백억원을 80년 중화학파동 때 내놓은 관계로 가족지분은 별로 없고 창업 동지 분이 많다.
코오롱은 이원만· 이동찬· 이웅렬 3대 3명의 가장 단출한 소가족주의이고 이밖에 선경· 국제· 한진· 롯데· 두산· 한국화약· 금호그룹 등도 모두다 혈연과 경영권에 따라 대주주 가족을 이루고 있다.
럭키그룹은 구· 허씨 가계가 압도적인데 구자경 (그룹회장) , 구자원 (국제증권사장· 구자경 회장의 4촌·고 구철회씨 장남) ,허준구 (그룹 부회장)씨 등 3명이 주류. 이밖에 최근에는 구자경 회장의 장남인 본무(금성사 이사)씨도 금성전기· 범한화재에 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럭키의 주식분포는 「연방정부」 의 성격을 띠어 어느 누구도 절대다수의 주식을 갖고있지 않다. 예를 들어 (주)럭키의 경우 총 주식 6천만주 중에 구자경 회장은 19만8천주, 구두회 금성반도체 사장이 19만주, 허준구 부회장이 18만8천주씩 나누어 갖고 있다.
현대그룹은 그 동안의 갖은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공개를 않고 정주영 회장 일가가 소유하고 있다.
일찍 공개된 현대자동차는 상호주가 많아 정주영 회장이 1백81만주, 정세영 현대자동차사장이 4백32만주, 장정자씨 (정 회장의 제수)가 74만5천주를 각각 갖고 있는 반면 현대계열인 국일 증권이 2백38만주, 금강개발이 1백만 주, 현대건설이 5백만 주, 현대중공업이 2천1백만 주 등을 각각 갖고 있다.
삼성그룹은 후계자를 중심으로 해서 각 계열사의 경영진들에게 골고루 주식을 나눴다.
주력인 삼성물산의 경우 총 주식 2천4백만 주 중 이건희 그룹 부회장이 1백44만5천주로 가장 많고 이병철 회장은 81만7천주, 그 밖에 경주현 삼성물산사장이 7만9천주, 강진구 한국전자통신사장이 7만2천주 등이다.
한편 국제상사는 총 2찬4만주 중 양정모 회장의 7백61만4천주, 같은 계열인 동서증권의 1백82만4천주를 제외하고는 양 회장의 사위인 한윤구 국제상사사장이 33만주를 갖고 있어 상위에 올라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밖에 양 회장의 4촌이며 창업동지인 양형모 씨가 12만주, 조동환 전 국제상시 사장이 6만9천주 등을 각각 갖고 있다.
또 진양회장 양규모 씨와 관계가 깊었던 단사천 한국제지회장도 13만여 주를 갖고 있다.
롯데제과는 신격호 (회장)· 준호 (사장) 형제가 각각 2백28만주, 11만1천주씩을 가지고 있고 유창순 전 총리(현 롯데그룹 고문)가 4만5천주를 갖고 있는 것이 눈에 뛴다.
(주)한진은 조중훈 회장 (2백7만주) 밑으로 양호 (52만1천주) , 남호 (31만8천주) , 수호 (34만7천주) , 정호 (17만4천주), 현숙 (14만5천주) 씨 등 5남매가 차례로 일가를 이뤘다.
이밖에 (주)선경은 최종현 회장이 총 주식 3천만주 중 2백22만주를 갖고 있고 나머지 중 22만9천4백77주씩이 조카인 최신원· 창원, 전 셰라톤워커힐 이사 이만수, 전 영남방직 부사장 이성수씨 등에게 한 주도 안 틀리게 똑같이 배분돼있다. (주)선경이사로 있는 최윤원씨 (최 회장 조카)는 34만7천주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식시장에서의 소유주식명의는 이처럼 혈연이나 경영권을 따져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실명보다는 가명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증권관계자들은 말한다.
말하자면 일부기업의 대주주들은 상장기업의 요건을 갖추는 범위 안에서 (총 발행주식의 51% 이하) 또는 세법상 공개법인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총 발행주식의 35%이하) 실명을 동원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증권관계자들은 실명제가 그대로 밀어 붙여질 경우 매물이 쏟아져 나오는 등 적지 않은 장세의 혼란이 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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