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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In&Out 레저] 훗카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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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벌판을 달리는 철마('철도원'), 얼음만큼 투명한 사랑의 감동 ('러브레터')….

이곳에 얽힌 영화의 진한 감동 때문일까. 일본 열도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는 으레 '설국(雪國)'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기나긴 겨울의 땅, 홋카이도에도 짧은 만큼 화려한 여름이 있다. 특히 개발에서 비켜나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홋카이도의 '속살' 도토(道東) 지역의 8월은 한 폭 그림 같은 봉우리와 협곡.호수.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8월 평균 기온 23도의 선선함은 무더위에 지친 우리에겐 여행지로서 또 다른 매력이다.

홋카이도의 관문 지토세 공항에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아칸(阿寒) 호수는 이 여행의 기점이 된다. 1000m가 넘는 고봉으로 둘러싸인 채 물안개에 잠긴 아칸 호수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국립공원이자 온천지대다.

인근에 유황산, 온천 호수 등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한 이곳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은 물빛 맑기로 이름난 마슈(摩周) 호수다. 200m 절벽으로 둘러싸인 칼데라 호수로서 뚜렷한 수원(水源)이나 출로가 없어도 항상 수위가 일정한 신비의 호수다. 물빛에 반한 일본 왕세자 부부가 다음 일정을 취소하고 하루 더 묵었다고 한다.

사람 손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자연을 만나고 싶다면 홋카이도의 동쪽 끝, 시레토코(知床) 반도로 가자. 원주민인 아이누족 말로 '대지가 끝나는 곳'이라는 이곳은 인간의 접근을 막는 험한 자연 때문에 원시림과 야생곰 등 생태계가 잘 보존돼 7월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우토로 항을 출발, 200m가 넘는 해안 절벽을 따라 도는 2시간여의 뱃길은 곳곳에서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반도 안쪽엔 아름다움에 감탄한 신(神)이 뻗었다 남긴 다섯 손가락의 자국이라는 전설이 전하는 5개의 작은 호수가 숨어 있다. 눈이 남아 있는 산을 배경으로 잔잔한 수면에 푸른 하늘을 가득 담은 호수들의 아름다움은 이곳 최고의 비경으로 꼽힌다.

시레토코에선 앞서 가던 차가 멈춰 선다면 조용히 따라 멈추자. 풀 뜯는 사슴 가족, 운이 좋다면 야생곰도 볼 수 있다. 시레토코에는 야성을 잃지 않은 일본 곰 수백 마리가 살고 있다.

오호츠크해를 낀 해안도로를 타고 반도를 나오면 바다에 떠다니는 얼음, 이른바 유빙(流氷)으로 유명한 아바시리(網走)에 닿는다. 이곳은 한여름에도 유빙을 만질 수 있는 오호츠크 유빙관, 메이지 시대 수형자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아바시리 감옥, 아이누 등 소수 민족들의 생활사를 보여주는 북방민족 박물관 등 볼거리가 쏠쏠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한국에서 직항편이 없고 관광지라면 으레 있을 법한 화려한 '밤 문화'가 없다는 것. 하지만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근 채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별을 헤는 여유를 경험하고 싶다면, 그런 불편함 따위는 감수해도 좋지 않을까. 마음의 여유, 삶의 재충전이 필요한 당신이라면 푸른 홋카이도, 그 짧지만 화려한 여름에 빠져 보시라.

홋카이도=글.사진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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