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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수능 수석 45인 추적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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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올해로 스물한 살이 됐습니다. 1994학년도 대입에 처음 도입돼 지난달 13일 치른 2015학년도 수능까지 모두 23차례의 시험을 치렀습니다. 첫 시험을 본 94학번은 지금 39세이고 올해 대학에 들어간 2014학번은 19세입니다. 말하자면 지금의 ‘2030 세대’는 ‘수능 세대’인 것입니다.

우리 시대 청춘들은 ‘수능’이라는 장벽을 넘어서며 젊음의 때를 지나왔습니다. 청춘리포트팀은 수능이라는 인생의 관문을 가장 화려하게 통과한 이들을 추적했습니다. 수능에서 전국 1등을 차지한 수석들입니다.

94학년도부터 2015학년도까지 수능에 응시한 총인원은 약 1580만 명. 이 가운데 파악이 가능한 수능 수석은 문·이과를 합쳐 45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수능 성적으론 대한민국에서 약 0.001%에 속하는 수재입니다. 수능 수석을 차지했던 청춘들은 인생에서도 1등에 올랐을까요. 여기, ‘공부의 신’들의 삶을 추적한 생생한 보고서를 내놓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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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팀이 ‘수능 수석’들을 추적하기로 계획을 세운 것은 지난 10월 초다. 처음엔 조금은 질투 섞인 물음에서 시작됐다.

 “그 잘난 수능 1등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러나 추적은 쉽지 않았다. 2000학년도 이후에는 수석자에 대한 공식 발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청춘리포트팀은 사설 입시학원의 발표와 언론 보도 등을 근거로 추적에 나섰다. 최종적으로 파악한 수능 수석은 모두 45명(문과 24명, 이과 21명)이었다. 만점자가 20명 이상 배출됐던 2001학년도 수능과 2005학년도 문과 수능, 수능 원점수를 발표하지 않은 2008학년도는 제외했다.

 청춘리포트팀은 우선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27명이 설문에 응했다. 5명은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심층 인터뷰를 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수능 수석들의 삶은 다소 전형적이었다. 공부로만 따지자면 대한민국 최고의 브레인이라 할 만했지만 이들이 선택한 인생 행로는 다소 뻔했다. 진학한 대학은 서울대가 85%(38명)로 절대 다수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문과 수석은 법조인, 이과 수석은 의사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과는 외환위기 이후 의대 쏠림 현상

 시대별로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과 수석들은 2000학년도를 기준으로 명확히 갈렸다. 1994~99학년도 이과 수석들은 순수 이공계 학문을 택했다. 이들은 서울대 물리학과 또는 전기전자공학과에 진학했고 미국에서 석·박사를 마친 뒤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특히 94·95·96학년도 수석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고 한다. 현재 94학년도 수석은 애플에서, 96학년도 수석은 삼성 미국 지사에서, 97학년도 수석은 국책연구기관에서 각각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99학년도 수석은 하버드대 연구원으로 있다. 95학년도 수석 정성택(38)씨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운영 중이다.

 이들은 “한국에서의 교육보다 미국 유학 중 배운 것이 인생에 더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97학번 수석은 “수능 수석을 했던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 이과 수석들은 절대 다수가 의사의 길을 택했다. 2000학년도 이후 수석 16명 중 3명(서울대 수학과 2명, 서울대 자유전공 1명)을 제외한 13명이 의·치대에 진학했다. 이 중 한 명은 90년대 말 서울대 이공계에 진학했지만 2000년대 중반 수능을 다시 보고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문과 수석들의 진로는 로스쿨이 도입된 2009년 전 후로 법학과와 경영학과로 갈린다. 94학년도부터 2008학년도까지 14명 중 11명이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나머지 3명은 각각 서울대 경제학과·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11명 중 8명이 법조인이 됐고 1명은 진로를 바꿔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법대에 진학했으나 법조인 명부에 없는 2명은 현재 직업이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로스쿨 도입 이후인 2009학년도부터는 문과 수석들의 경영학과 쏠림 현상이 뚜렷했다. 2009학년도 이후 수석자 10명 중 8명이 경영학과(서울대 6명, 연세대 2명)를 택했다.

중산층 이상 많아 ‘학력 대물림’ 뚜렷

 수능 수석들의 경우 중산층 이상 출신이 많았다. 수능 시험을 볼 당시 거주지를 조사한 결과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가 6명으로 가장 많았다. 부모 직업은 ▶의사·약사(9명) ▶교수·교사(8명) ▶법조인(4명) 순이었다. 부모의 경제력 수준을 상위 50%(중산층) 이상이라고 답한 경우가 22명이었다. 반면 하위 30%라고 답한 수석자는 2명에 그쳤다. 이들은 부모 직업이 노점상·건설노동자라고 했다.

 출신 고등학교도 쏠림 현상이 뚜렷했다. 특목고·자사고 등이 30명이었고 일반고 출신은 15명에 그쳤다. 전주 상산고(5명), 대원외고(3명) 순으로 수석자가 많았다.

현재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7점

 ‘수능 수석’이란 타이틀이 삶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응답도 많았다. 수석자들의 현재 삶과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평균 7점이었다. 2010학년도 문과 수석 A씨는 “수능 수석 이후 학과 성적 등 모든 면모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석들의 가정 경제력 등을 볼 때 학력 대물림 현상이 심해지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또 “수석들의 삶·직업 만족도가 평균 수준에 불과한 것은 의외”라며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한 반면 지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서준·윤정민 기자

5인이 말하는 수능 수석 이후의 삶과 고민

미국대학서 배운 신뢰·협력
실리콘밸리서 창업 밑거름
1995학년도 정성택씨

1995학년도 이과 수석 정성택(38·서울대 전기전자공학과 졸업)씨는 대학도 수석으로 조기 졸업했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다 2년 전 실리콘밸리에서 정보기술(IT) 벤처기업 ‘휴먼베스트’를 창업했다. 친구가 추천한 광고만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효율적인 페이스북 광고를 하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운영 중이다. 페이스북 광고목록 접근 권한을 가진 미국에서도 몇 안 되는 업체다. 정씨는 세계적으로 5000만 건 이상 다운로드된 모바일 브라우저 앱 ‘돌핀브라우저’를 개발한 벤처기업의 총괄사장이기도 했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아니었으면 창업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며 “창업을 위해선 자금 지원보다는 신뢰와 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실리콘밸리엔 Gentelman’s NDA(신뢰에 기반한 비밀유지약정) 문화가 깔려 있다고 했다. 일일이 법무팀을 통해 서류를 남기고 법적 분쟁이 빈번한 일반적인 기업문화와 다르다는 말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걸고 있지만 재정적 지원에만 그친 채 전시행정으로 마무리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에게 ‘수능 수석이란 성과를 얻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순서’를 묻자 미국 사회를 4위로 꼽았다. 한국 사회는 7위였다. 그는 미국과학재단(NSF)과 스탠퍼드대에서 창업자금을 지원받았다. 정씨는 “한국 사회에 반감은 없지만 미국에서 공부한 것들이 벤처기업을 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사회를 이렇게 꼬집었다. “입시지옥은 어려운 수능이 아니라 수능에만 매달려야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든 것입니다. 비인간적인 경쟁을 막겠다고 변별력을 없애면 다른 곳에서 비인간적인 경쟁이 벌어지겠죠.”

외환위기 겪던 기업에 자극
국제 소송 전문 변호사 활동
2002학년도 윤석준씨

2002학년도 수능 문과 수석 윤석준(32·서울대 법학과 졸업)씨는 ‘성취를 얻는 데 무엇이 가장 큰 역할을 했는가’란 설문에 ‘가족의 지원’을 꼽았다.

학교 교사인 윤씨의 부모는 어떤 지원을 했던 걸까. 윤씨는 “제 앞에서 성적표를 보신 적도 없고 성적표를 달라고 하신 적도 없어요”라며 의외의 답을 했다. 부모로부터 “공부하라”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부모는 윤씨에게 ‘부담’ 대신 ‘자극’을 계속해서 던져줬다.

“어릴 때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어요. 여행 일주일 전이면 부모님이 여행 가는 곳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한국지리’ 같은 과목은 그때 찾아봤던 걸 바탕으로 쉽게 공부할 수 있었죠.”

 윤씨는 학창 시절 통틀어 학원을 다녀 본 적이 1개월뿐이다. 그는 지역 비평준화 고등학교(전북 익산 남성고)에서 사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의 혜택을 받았다고 했다. 윤씨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 자극도 많이 받았고 선생님들도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서울 강남 지역에서 진로 컨설턴트가 수백만원인데 저는 고등학교에서 비슷한 지원을 받았다”며 “변호사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유명 재수학원의 교재와 모의고사로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윤씨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국내 기업이 외국자본에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국제 소송 변호사를 꿈꿨다고 한다. 현재 윤씨는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국제 소송 전문 변호사로서 ‘먹튀’ 논란에 선 사모펀드 론스타를 상대로 대한민국을 대리하고 있다.

아버지 조언에 의사 됐지만 평소 관심 있던 법학 공부도
2005학년도 손정구씨

“고백합니다. 저 ‘대치동 키즈’예요. 사교육 참 많이 받았죠.”

 2005학년도 수능 이과 수석 손정구(30·연세대 치과대학 졸업)씨가 이런 ‘고백’을 했다. 그러니 직설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수능 수석은 사교육 덕분이란 얘기군요.

 “하하. 그런 얘기는 아니고요…. 사교육이 모의고사 점수는 보장합니다. 하지만 수능은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손씨의 고백에는 이유가 있었다. 손씨는 삼수생 출신이다. 세 번째 도전한 수능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500점 만점에 2점짜리 문제를 한 개 틀렸다.

 하지만 그런 그도 첫 수능에선 지원한 모든 학교에서 떨어졌다. 두 번째 시험도 시원찮았다. 손씨는 당시 “사교육에만 의존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손씨는 세 번째 수능을 앞두고 모든 사설학원을 그만뒀다. 대신 연습장에 교과목 목차만 적어두고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씨는 “사교육의 한계와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삼수 때 깨달았다. 이해하려 노력하고 혼자 정리하는 진짜 내 공부를 그때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손씨는 아버지를 따라 금융계 진출을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의대 진학을 권유했다. 손씨는 “아버지가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난 뒤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해 그대로 따랐다”고 말했다.

 수능 이후 손씨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현재 ‘경제학 학위를 가진 로스쿨 휴학생 치과의사’다. 공중보건의 시절 방송통신대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했고 학점은행제 법학학사 과정을 시작으로 법학을 공부해 지난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도 합격했다. 현재는 지인들과 함께 서울 서초동에서 치과를 운영 중이다. 그는 “수능 삼수는 ‘진짜 공부’를 알게 해준 계기였다”고 했다.

수능은 대입 위한 과정일 뿐 … 변호사 되고도 고민은 계속
2006학년도 박지원씨

“수능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사람들 생각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영향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2006학년도 수능 시험에서 한 문제만 틀리고 전국 수석을 차지한 박지원(27)씨는 의외의 말을 했다. ‘수능=인생 성공’이란 등식이 정답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수능 수석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오다니….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씨는 더 강한 발언을 내뱉었다.

 “고등학교 교육은 수능에도, 인생에도 별로 도움이 안 됐어요. 단지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치고 수능 공부만 해서 대학에 일찍 들어가는 게 나았을 것 같아요.”

 -공교육에 많이 실망한 것 같은데 어떻게 수석까지 차지했나요.

 “고교생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효용성이 큰 일이 수능 공부였기 때문에 그저 충실히 공부했을 뿐이죠.”

 박씨는 고3 때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했다. 의대 교수였던 아버지는 박씨 역시 의사가 되길 기대했지만, 법이나 사회과학에 더 흥미를 느꼈다. 대학에 가서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계속됐다. 박씨는 “수능 성공으로 좋은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고 덕분에 ‘먹고사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압박은 덜했지만, 역시 ‘뭘 하면서 먹고살지’는 큰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사법고시를 선택했고 변호사가 됐다. 공익법무관 군 복무를 마치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결혼도 할 예정이다. 수능을 정복한 그지만, 여전히 새로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는 “시민단체 활동 같은 공익적인 역할에도 관심이 많다”며 “어떻게 사무실을 이끌어 갈지, 또 내가 얻은 이익들을 어떻게 우리 사회에 돌려줄 수 있을지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벤처 창업 실패 부담보다 망가진 만점자 소리 더 걱정
2013학년도 이승규씨

‘앞으로 뭐 하고 살까.’ 2013학년도 수학능력시험 만점자 이승규(20·서울대 자유전공학부)씨가 가진 최대 고민이다. 그는 뇌과학자가 되고 싶어 법학과나 경영학과 대신 자유롭게 수업을 짤 수 있는 자유전공학부를 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공지능 기술과 경제학에도 관심이 많고, 창업동아리에도 가입했다.

 진로 고민에 휩싸인 그를 짓누르는 건 ‘수능 만점자’라는 타이틀이다. 벤처 창업 등 소신대로 진로를 결정하는 것을 망설이는 것도 이 타이틀이 주는 부담감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성공’이라고 인정하는 길로 가지 않으면 ‘수능 뒤에 망가졌다’는 뒷말이 나올까 신경 쓰인다고 했다. 이씨는 “수능 성적은 대학 진학만 결정했을 뿐 모든 걸 보장해주진 않는다”며 “이제부터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능 수석이 부담으로만 남은 건 아니다. 일반고(대구 대륜고)를 다닌 이씨는 노력 하나로 수능을 정복했다. 그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벽에 쪽지를 붙여놓고 공부했을 정도로 치열했다. 이 덕분에 고향 대구의 후배들에게도 ‘서울 강남이나 특목고 출신이 아니라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선배가 됐다.

 비교적 최근에 수능을 치른 이씨에게 수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씨는 “EBS 연계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며 “또 지나치게 쉬운 수능은 한 개만 틀려도 당락이 크게 바뀌게 돼 수험생들의 심적 부담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인터뷰 도중 “수능 결과를 잊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수능 수석이란 부담에 빠져 위축되지도, 영광에 취해 과거에 머무르지도 않겠다는 다짐으로 읽혔다.

이서준·윤정민 기자

난이도 논란 얼룩진 수능 21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암기력 대신 사고력 평가’를 내세우며 도입됐다. 첫 시험인 1994학년도 제1차 수능은 93년 8월 20일 치러졌다. 첫해엔 8월과 11월 두 차례 시험이 진행됐지만, ‘입시 지옥’이란 불만이 터져 나오며 다음해부터 한 번만 치르게 됐다.

 수능은 ‘난이도 조절’에 거듭 실패했다. 97년도는 최악의 ‘불수능(난이도가 높은 수능)’으로 꼽히며 수많은 수험생을 좌절하게 했다. 이후 난이도가 낮아지며 2001학년도엔 무려 66명의 만점자가 쏟아졌다. 당시 수능을 본 윤석준(32·2012학년도 수석)씨는 “한두 개만 틀려도 서울대 지원조차 못 한다는 말이 돌았다”고 말했다. 다음해인 2002학년도엔 다시 난이도가 대폭 상향됐지만, 더 큰 혼란만 빚었다. 가채점 결과에 충격을 받은 학생들이 집단 결석하는 등 파장이 이어졌다.

 2004학년도엔 처음으로 출제 오류가 발견돼 언어영역 17번 문제에 대해 복수정답이 인정됐다. 이후 2008·2010·2014학년도에도 복수정답이 인정됐고, 올해는 생명과학Ⅱ와 영어에서 오류가 발생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퇴했다.

 2005학년도 이후 수능은 큰 변화를 맞았다. 각자 원하는 영역을 선택할 수 있게 됐고, EBS 연계 문제를 출제하기 시작했다. EBS 연계 출제 비율은 현재 70%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교육 절감 효과가 작고 문제의 질만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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