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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26〉쿠바 아바나 국제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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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통신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엄마 정호현(42·영화감독·쿠바 아바나 플라야 지역)

엄마 정호현(왼쪽)씨와 아들 파드론 정 이안군.

2007년 쿠바인 남편과 결혼해 아들 파드론 정 이안(6)을 낳았다. 한국에서 하던 영화 제작 관련 일을 쿠바에서 할 기회가 생겨 2010년 온 가족이 남편의 고향 쿠바 아바나로 오게 됐다.

알려진 대로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다. 한국 사람들은 ‘공산주의’라고 하면 곧바로 북한을 떠올리기 때문에 쿠바 역시 군사적으로 억압받는 나라로 여긴다. 하지만 쿠바에 살면서 한 번도 감시와 통제 아래 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 일단 이곳 사람들 분위기가 굉장히 부드럽고 상냥하다. 낯선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고, 흥에 겨우면 어디서나 춤추고 노래 부른다. 예술혼을 타고난 민족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쿠바인들은 춤과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

물론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는 데다 사회 체계가 엉망인 면도 있다. 일례로 남편과 결혼한 뒤 쿠바에서 혼인신고 하는 데만 무려 1년이 걸렸다. 쿠바 외무부와 법무부, 주일본 쿠바대사관과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등을 끝없이 돌고 돌아야 했다. 모든 게 평등하다는 게 공산주의의 이념이지만, 정작 힘센 사람이 든든한 배경이 돼 주거나 뒷돈을 써야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모순덩어리 나라이기도 하다.

쿠바 사람들은 이런 고국의 모습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혁명은 50년 전에 끝났고 지금 쿠바인은 일하는 척하고 정부는 월급을 주는 척만 할 뿐이다. 쿠바는 모두가 가난하고 논리적인 게 하나도 없다. 할 수 있는 건 단지 춤과 음악뿐이다.” 모든 창작물은 국가 검열을 받고, 카카오톡 등 인터넷 메신저도 다 막혀 있어 한국에 있는 지인과 연락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나라, 하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사람이 여유 넘치고 자유로운 나라가 바로 쿠바다.

쿠바로 간다고 했을 때 한국의 친정 식구들이 많이 말렸다. 이안이 교육문제 때문이다. 우리 부부야 성인이니 어디서 살든 스스로 책임지면 되지만 어린 이안이를 열악하고 낙후한 나라로 데려가는 건 불안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건 뭘 모르는 소리다.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의 핀란드’라 불릴 정도로 수준 높은 교육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교육 천국 핀란드에 비견할 만큼 학업 성취도와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쿠바에서 이안이가 힘들어하면 그때 한국에 돌아와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 과감하게 아이까지 데리고 왔다.

올해 여섯 살인 이안이는 영국계 국제학교인 아바나 인터내셔널 스쿨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쿠바는 모든 학교가 공립이고 사립은 국제학교 뿐이다. 국제학교는 영국계·스페인계·프랑스계 학교로 쿠바 전국에 딱 세 곳이다. 공립학교가 아닌 국제학교를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워서다. 나와 남편 모두 직장 생활하는 맞벌이라 학교까지 거리가 멀면 아이를 돌보기 힘들 것 같았다. 물론 국제학교 시설이 공립학교보다 더 좋고 방과후활동이 많아 이안이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는 것도 장점이다. 사실 쿠바 공립학교의 교육 수준은 높지만, 시설은 정말 낙후했다. 창문이 부서진 건 예사고, 화장실 변기가 망가진 채 몇 달 동안 방치돼 있어도 예산 부족으로 쉽게 고치지 못한다.

아바나 국제학교 학생들이 수영장에서 방과후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쿠바의 공립학교는 시설이 열악하지만 국제학교는 선진국못지 않게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아바나 인터내셔널 스쿨에는 이안이 말고도 한국 아이가 2명 더 있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 자녀다. 쿠바는 한국과 수교하지 않았지만, 코트라를 통해 민간 차원 교류는 활발하게 한다. 한류 역시 한국과 쿠바의 교류를 넓혀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K팝보다 한국 드라마 인기가 더 뜨겁다. 쿠바는 총 4개의 TV 채널 중 2개가 교육방송이다. 사실상 채널이 2개뿐인 셈이다. TV를 틀어보면 둘 중 한 채널에서는 꼭 한국 드라마를 방영한다. ‘아가씨를 부탁해’와 ‘내조의 여왕’은 엄청난 인기였다. 쿠바 사람들에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부분 “남자가 여자에게 헌신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고 한다. 쿠바 사람들은 자유분방해서인지 이혼율이 매우 높은데, 한 여자만 바라보는 우직한 남자 주인공 모습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모양이다.

다른 나라 국제학교는 입학할 때 시험을 본다는데 쿠바 국제학교는 그렇지 않다. 외국 국적자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고, 따로 시험을 보지 않는다. 한국의 외국인 학교 중에는 국적만 외국인인 한국 아이들로 채워진 곳이 많다고 들었는데 쿠바의 국제학교는 정말 외국 아이들뿐이다.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대사관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그래서인지 국제학교엔 대사관 직원 자녀가 대다수다. 대사관 관용 버스가 학교 스쿨버스처럼 등하교 시간에 아이들을 실어 나를 정도다.

초등부 교사들과 함께 뮤지컬공연을 마친 뒤 기념촬영 했다. 왼쪽 아래가 이안군. [사진 정호현]

국제학교가 원래 외국 국적자만 다닐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쿠바 현지 아이들은 국제학교 입학을 허가해줘도 비싼 학비 때문에 다니기 힘들다. 아바나 인터내셔널 스쿨 연 학비가 1만3000달러(한화 1430만원)다. 의사 월급이 4만~5만원, 교사 월급이 2만~3만원 수준인 쿠바에서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바나 인터내셔널 스쿨의 정규 수업 시간은 오전 8시 1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다. 이안이는 오후 2시 30분~3시 30분까지 하는 방과후수업을 매일 듣고 온다. 월요일은 그림 그리기, 화요일은 도자기 만들기, 수·목요일은 태권도, 금요일은 스토리텔링을 배운다. 스토리텔링은 교사가 동화 한 대목을 들려주면 아이가 상상해서 뒷 이야기를 꾸며보거나, 주인공을 바꿔서 이야기를 각색하는 식이다. 가장 신기한 건 태권도 수업이다. 한국과 수교도 맺지 않은 쿠바에서, 그것도 영국계 국제학교를 보냈는데 내 아이가 태권도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수업은 영국 교사가 진행하지만 태권도 도복은 한국의 태권도 단체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교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

학업 분위기는 자유롭다. 물론 국제학교라 그렇겠지만 쿠바 사회 전체에 흐르는 여유와 초탈한 듯한 태도가 더해진 것도 한 요인 같다. 매주 한번 퀴즈를 본다는데, 부모에게 결과를 통보해 주지 않는다. 학교 다닌 지 1년이 다 됐지만 이안이가 언제 퀴즈를 봤는지, 몇 점을 받았는지 학교에서 한 번도 알려준 적이 없다. 한 학기에 한 번 있는 교사와의 만남 시간에도 성적을 주제로 얘기하지는 않는다. 다들 아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음식은 골고루 잘 먹는지, 운동 시간에 잘 참여하는 지에만 관심이 있다. 방과후수업을 고를 때도 부모 입장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과목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시간표를 짠다. 나도 이안이가 운동을 싫어해서 수영이나 테니스는 굳이 배우라고 권하지 않았다. 쿠바에 있다보면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아라”는 교육 태도에 저절로 젖어들게 되는 것 같다.

아바나 국제학교 전경.

그렇다고 학교에서 마냥 놀게 하는 건 아니다. 과제는 한국 학교보다 많다. 매일 숙제하는 데만 1시간 이상을 쓰니 말이다. 영어 과제는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대목을 골라 베껴 쓰기’, 수학은 더하기나 빼기 같은 연산 문제 풀기, 스페인어 수업은 그림일기 쓰기 등을 과제로 내준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된 아이가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것보다는 밖에서 뛰어놀면서 배울 수 있는 생태환경적인 수업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학교에서 급식을 하지 않아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줘야 하는 것도 맞벌이 엄마에겐 단점으로 다가온다.

가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하다 보면 “평생 쿠바에서 살 게 아니라면 쿠바처럼 경쟁 없는 환경에서 이안이를 키우는 게 걱정스럽지 않냐”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정반대인 곳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런 불안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편을 포함해 쿠바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이런 불안이 눈녹듯 사라진다. 쿠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정말 내 일이 좋다” “이 일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거다. 이안이가 정말 자신에게 잘 맞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평생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만한 행복이 또 있을까 싶다.

아무리 경쟁이 덜 하다지만 쿠바에도 사교육은 있다. 대학 입학이나 예술학교 입학을 앞두고 취약한 과목 과외를 받는 거다. 쿠바는 유치원에서 대학원 석사·박사과정까지 모든 교육 과정이 무상이지만, 성적 관리를 철저히 한다. 중학교까지는 의무 교육이고, 고등학교부터는 일정 성적에 못미치면 진학이불가능하다. 무상 교육으로 학력 인플레도 심한 편이라 쿠바에서 청소부만 하려해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필수다.

아바나 국제학교 교사들. 세계 여러나라 출신이 다니는 학교인 만큼 교사의 국적과 인종도 다양하다. [사진 아바나 국제학교]

쿠바 대학은 15개 도별로 하나씩 있고 평준화 체제라, 원칙적으로 거주지 인근의 대학에 갈 수 있다. 그 대학에 지원하고자 하는 전공 학과가 없는 경우만 다른 도시 대학 입학이 가능하다. 대학에 들어갈 땐 고교 내신성적과 국가시험 성적을 함께 본다. 바로 이 국가시험을 앞두고 과외를 받는 학생이 종종 있다.

이안이는 예술학교에 보낼 생각이라 현재 음악 과외를 시키고 있다. 일주일에 피아노 30분, 드럼 30분씩 배운다. 쿠바 예술학교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원할 수 있는데, 예술학교에 들어갈 때는 청음 능력, 박자 감각, 음감 등을 평가한다. 악기 연주를 시켜보거나 음악적 지식을 묻지 않는다. 대신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본다. 음악학교 역시 교육 수준은 뛰어나지만 시설이 낙후돼 있어 걱정이 앞선다. “질이 보장된다면 시설쯤이야”라는 생각은 21세기엔 적용되기 힘든 슬로건이란 생각도 든다.

쿠바의 교육은 이처럼 한국과는 모든 부분에서 반대 지점에 놓여 있다. 적응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학원 수준에서 예술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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