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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골치수도 비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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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생시대의 인골은 최근 금관장부의 훌륭한 연구가 발표된바 있다. 금관씨에 따르면 산구현 토정빈과 좌하현 삼진의 미생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인골의 계측치는 한반도 남부의 평균신장(162·51㎝)및 한반도 고분출토 인골의 두장폭지수(80·7)에 가깝다.
특히 일본 근기지방 고분출토 인골의 두폭지수와도 비슷한 점이 주목된다. 근기지방에서의 현대일본인의 생체계측치는 현대한국인의 그것과 가장 가깝다. 이는 대화국가 형성및 발전에 대한 필자의 견해에 하나의 방증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언어가 민족의 기원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일본어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견해가 있어 아직 정설이 없는 것으로 안다. 일본어도 고대에는 모음조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고, 교착어등 문법구조가 한국어와 거의 같음으로해서 알타이어족으로 보는 견해가 일찌기 있었다.
그런데 언어의 계통론에서 이러한 문법체계보다는 공통어가 많이 있어야 된다는 방법론상의 문제가 있어서 일본어의 알타이어족설에 이견을 제시하는 학자가 많이 있게됐다. 즉 일본어의 어휘에는 한국어에서 온 단어가 대단히 적다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은 일본민족및 국가의 형성 과정을 인식한다면 자연히 풀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일본어는 대화국가의 지배계급이 한반도로부터의 이주민이었기때문에 그 문법체계는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어의 그것이 되었고, 선주민의 수가 많고 혼혈이 많이 되었기 때문에 단어에 있어서는 남방아시아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남방아시아어라는 것은 넓게는 남방어라고도하여 동남아시아에서 남태평양에 걸친 많은 도서의 언어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일본어의 모음은 고대어에는 8개였었는데, 그뒤 5모음으로 된것은 역시 남방어의 영향일 것이다. 폴리네시아어가 5모음이라고 한다. 또 일본어의 단어가 모음으로 끝나는 개모음의 특징을 가진 것도 폴리네시아어와 같다. 그러므로 일본어의 기원문제는 문법체계를 중요시하느냐, 공통어를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견해가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일본어중에 한국어로부터 온 단어가 더욱 많이 발견되고 있다. 최근 워싱턴대학의 「밀러」교수는 『일본어의 기원』에서 일본어는 알타이어라고 주장했다.
일본어의 기원문제는 그 민족구성이 복잡한만큼 어렵다. 일본어의 단어에는 아이누어로부터 온 것도 있고, 남방어로부터 온것도 있다. 그러나 일본어의 문법체계가 한국어와 같다는 것은 대화국가의 지배계급이 어디서 온 민족인가를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1972년, 나량의 비조에선 고송총이란 무덤이 발견됐는데, 그무덤의 네 벽과 천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어 큰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다. 그중에서 동서 두벽에 남녀 4명씩의 인물상이 화려한 색채로 그려졌는데, 특히 여인상들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본것과 같은 한국 의상을 입은 것이어서 더욱 놀라게 했었다.
더우기 남녀의복의 저고리 깃(금)이 왼쪽으로 여민식의 좌임이어서 한국계 의복임을 증명해 주었다.
이 무덤의 피장자는 왕자 또는「대납언」이상의 귀족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의상이 모두 한국계의 것인 점은 당시 지배계급의 출자를 시사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에서 일본민족의 형성에 우리민족이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논하였다.
한반도로부터의 이주민들이 일본의 건국과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당시의 지식계급은 거의가 한반도계의 자손들이었음은 물론이다.
그 한 예로 추고천황16년(608년)에 당에 파견된 유학생·유학자 8명중 출자가 분명치 않은 1명을 제외한 7명이 모두 한반도계의 자손들이고, 나머지 한명도 한국계일 가능성이 크다.
또 한반도계인이 세발·독점한 직업에 「사」(후히도)가 있다. 이들은 모든 공공기록 문서를 다루며 특히 조정에서 사관으로 역사기록을 맡았다. 『고사기』의 찬자태조신안마려(안만)도 이른바 「귀화인」이다. 『일본서기』의 찬자에는 일품사인친왕의 이름만이 씌어있으나 그의 이름은 편찬을 명령받은 대표자일뿐 실제의 편찬에는 많은 한반도계의 사관이 참여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한반도계의 이주민들은 세윌이 흐르고 세대가 바뀜에 따라 완전히 일본인화 했음은 물론이다. 이들 지식계급이 『일본서기』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반도에 대해 반드시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던 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막연한 「혈연적 의식」에 안이하게 빠져 들어가는 것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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