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서랍 열쇠는 박 경정 책상 밑 자석에 붙어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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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시내 모 경찰서 박모 경정이 1일 취재진을 뒤로하고 서울 하계동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 경정은 이날 오전 경찰서에 출근해 휴가계를 냈다. [사진 서울신문]

‘정윤회 동향’ 문건 등 청와대 내부 문건이 유출된 과정을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 내부의 역학 관계에 따라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면서 권력 암투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에 근무했던 일부 인사들은 문건 작성자인 박모 경정이 아닌 제3의 청와대 내부 인사가 해당 문건을 복사해 유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이 지난 5월 말~6월 초 민정수석실에 보고됐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12월 1일자 1면

 이들에 따르면 당시 문건은 박 경정의 책상 서랍에 보관돼 있었다. 이 서랍에 있던 문건은 모두 A4 용지 박스 1개 분량(약 2500장). 박 경정이 서랍 열쇠를 책상 밑 자석에 붙여 보관했는데, 누군가 비어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몰래 들어와 이 열쇠로 서랍을 열고 문건을 복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서랍 열쇠가 책상 밑에 보관돼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들 뿐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문건을 복사한 청와대 인사가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박 경정 역시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서랍을 열고 문건을 모두 복사했다. 관련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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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현직 청와대 인사들과 민정수석실 측에선 여전히 박 경정을 유출자로 보고 있다. 그가 지난 2월 경찰로 복귀하면서 문건을 들고 나가 일부 언론에 건넸다는 얘기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보안 시스템상 문건을 서류 형태로 통째로 반출할 순 없지만 사진 파일 등 다른 형태로 일부 가져갔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경정이 서울의 한 경찰서 과장으로 사실상 좌천되면서 인사 조치에 불만을 품고 해당 문건을 들고나갔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건을 언론에 유출시켜 청와대 핵심 실세들을 견제하려 했다는 것이다. 여권 핵심인사는 “박 경정은 각종 정보를 활용하는데 능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박 경정이 모종의 목적을 위해 문건을 청와대 밖으로 들고 나왔고 다른 누군가가 문건을 복사해 일부 언론에 건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또 ‘정윤회 문건’에 대해 “박 경정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측에 과잉충성을 하려다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했다. 문건 작성·유출 등이 박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 갈등에서 비롯된 일이란 주장이다. 실제 박 경정은 지난 3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박 회장이 전면에 나서 문고리 권력들을 견제해야 한다”며 박 회장을 옹호하는 듯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박 경정은 이날 오전 서울 시내 모 경찰서로 출근하면서 “문건을 유출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 박 경정 이르면 오늘 소환=서울중앙지검이 기존의 명예훼손 고소 사건을 분리해 명예훼손은 형사1부에서, 문건유출은 특수2부에서 수사토록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같은 조치는 문건유출에 대한 신속하고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달 안에 유출의 전모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우선 박 경정의 문건 유출 혐의부터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르면 2일 박 경정을 불러 세계일보가 보도한 문건의 작성 경위 및 보고·유출 과정을 조사하기로 했다. 또 유출 과정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검찰 수사관과 경찰청 정보관은 물론 조응천(공직기강)·이중희(민정) 전 비서관 등 당시 민정수석실 보고라인에 있던 인사들을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김정하·정강현·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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