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 않는 일본 … 모른체하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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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5일 종전 60주년을 맞아 침략행위를 사과하는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일본의 본심은 그게 아닌 것 같다. 현 일본 정부와 더없이 가깝게 지내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는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하고 있다.

◆ 일본의 본심=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15일 "일본에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거나 군국주의를 찬미하는 역사교과서는 하나도 없다"며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밤 NHK의 '종전 60년, 이제부터의 일본'이란 프로그램에 나와 "4월 교과서 검정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어느 대목이 잘못됐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한 적이 없지 않으냐"고 주장했다. 그는 후소샤 교과서를 직접 들고 나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종군위안부 표현이 삭제된 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는 참석자의 질문에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발언은 이날 고이즈미 총리가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하게 반성하고 마음으로 사죄한다"고 발표한 지 불과 반나절도 안 돼 나왔다. 마치무라 외상은 또 한 참석자가 "역사 교과서의 근대사 부분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고 만다"고 지적하자 "그건 일본 정부와 교사 간에 암묵적으로 이뤄져 있는 합의"라고 말했다.

◆ 미국의 응원=미국은 15일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날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승리나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부시는 5월 9일 유럽 승전 60주년 때 러시아에서 열린 기념식에 직접 참석했다. 미 의회와 언론도 조용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이례적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재선을 기원하는 사설까지 실었다. 사설은 "일본 야당은 이라크 철군을 공약했다"며 "고이즈미가 패하면 미국이 곤란해진다. 9.11 총선에서 고이즈미가 승리하길 희망한다"고 썼다.

미 의회 관계자는 "미국은 유대계 영향력이 강해 나치의 만행은 잊지 않고 기념한다"며 "그러나 태평양전쟁은 로비력이 센 맹방 일본을 의식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하원은 지난달 60년 만에 처음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사실을 보도한 미국 언론은 거의 없었다.

도쿄.워싱턴= 김현기.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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